[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하늘로 간 배우 칼 말덴

배역은 조연 연기는 주연


지난 1일 97세로 할리우드 스타들이 많이 사는 LA 서쪽 브렌트우드의 자택서 사망한 성격파 배우 칼 말덴(Karl Malden)은 비록 대부분의 역이 조연이었지만 그의 연기는 그 어느 연기파 주연배우들의 그 것에 못지 않게 훌륭한 것이었다. 기자는 지난 2005년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해 1월 기자가 속한 LA영화비평가 협회가 마련한 연례 각 부문 베스트를 위한 시상만찬 때였다. 그 해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배우 리처드 위드마크(지난 해 93세로 사망)가 선정됐는데 당시 코네티컷에 살던 그는 노령으로 비행기 여행이 힘들어 자기 평생 친구인 말덴을 대신 내보냈었다. 나는 만찬 전 홀에 있는 말덴을 목격했다. 말덴의 트레이드마크인 주먹코가 내 눈에 클로스업 되면서 나는 너무나 반가워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만나서 영광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수목’등 웬만한 당신의 영화는 다 봤지요”라고 말하자 그는 “응, 게리 쿠퍼”하면서 그 영화에서 공연한 쿠퍼의 이름을 댔다. 매우 상냥하고 어질고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어 그가 악역을 한 웨스턴 ‘애꾸눈 잭’등 여러 영화에 관해 얘기를 나눴는데 그는 식장으로 들어가기 전 내게 “제일 좋은 한국식당이 어디냐”라고 물었다. “내가 한번 한국식당엘 초청하겠다”고 말한 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구근처럼 생긴 코에다 매우 평범한 얼굴을 한 말덴은 자기가 결코 주연배우가 될 수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성격배우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못 하는 역이 없었다. 그러나 둘 다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워터프론트’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오스카 조연상 수상)에서 볼 수 있듯이 말덴의 연기는 주연배우들의 그 것을 거의 압도할 만큼 뛰어나다. 그는 스티브 매퀸이 주연한 ‘신시내티 키드’에서는 포커게임 딜러로 나오는데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연기를 했다. 말덴을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지난 1970년대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ABC-TV의 경찰드라마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의 루테넌트 마이크는 기억할 것이다. 말덴은 여기서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마이클 더글러스와 공연했는데 이 시리즈는 5년간 방영되는 인기를 누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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