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남북관계를 전망한다/정세현 민족통일연구원 원장(특별기고)

소의 해가 밝았다. 우리의 전통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소는 우직하지만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우리가 이러한 소의 장점을 배운다면 끝없는 국가경쟁의 시대에 살면서 올 한 해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의식하면서 올해의 남북관계를 전망해 본다.○「잠수함사과」 새 전기 그동안 남북관계를 극도로 경색시켰던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은 지난 해말 북한이 시인, 사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우리측 요구를 대체로 수용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는 새해의 시작과 함께 국면전환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동안 유보되었던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이 재개되고 위축되었던 남북경제교류도 잠수함 사건발생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면전환이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대립적인 남북관계의 본질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올해에는 남북한이 각각 대통령 선거와 공식권력 승계라는 국내적인 정치일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사안을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안논의 재개 기대 잠수함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북한 및 미국은 4자회담을 위한 3자공동설명회의 개최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1월 하순에 3자설명회가 열리고, 이어서 북한과 미국은 준고위급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의 추가 완화, 구상무역형태의 식량공급 허용 등의 조치를 취하는 한편, 양국은 미군유해 송환, 북한의 미사일수출,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등 양자간 현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것이다. 이러한 북미관계의 진전에 따라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3자설명회의 개최에도 불구하고 4자회담이 성사되거나 이를 계기로 남북대화가 재개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다.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하여 대미접근을 강화하면서도 남북긴장을 유지하는 이른바 통미봉남 전략을 계속 견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남북대화를 강조하는 미국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대규모 식량지원과 같은 요구조건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은 한미간의 갈등을 조성하려 할 것이며, 한미 양국은 4자회담 성사를 위한 방안과 관련하여 의견조율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잠수함사건 해결과 EU의 집행이사국 참여 및 중유비용 분담 등으로 인해 경수로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 후 연료봉의 봉인작업이 재개되는 한편, 후속 의정서의 조인 및 협상이 진행되고, 제7차 부지조사단의 방북이 실시되어, 올해 상반기중 부지 정리 공사가 착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한 남북한간 인적·물적 교류의 증대는 협력경험 축적에 기여할 것이다. ○예년수준 상호교역 그리고 지난해 침체양상을 보였던 남북교역은 금년에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임금을 통한 외화획득 및 경공업발전 기회확보를 위해 위탁가공을 선호하고 있으며, 우리 기업도 저임금 노동력 활용 및 대북투자 준비차원에서 위탁가공에 적극적인 점을 감안할 때, 상호실리에 바탕을 둔 위탁가공의 규모 및 범위가 증대될 것이다. 아울러 대북투자 논의를 위한 기업인의 방북과 남포공단 및 나진·선봉지역에서의 시범적 경협사업추진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반출물품 제한, 경화부족, 남북경제교류의 비제도화 등으로 인해 남북교역량이 예년 수준을 크게 상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북한이 춘궁기를 맞아 식량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원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우리 사회내에서도 대북식량제공 문제가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될 것이다.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며, 이는 정부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치쟁점화 안된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정부의 대북식량지원 3원칙(북한의 공식제의, 한반도내 회담, 대남비방·중상 중지)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남북한 당국간 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해에도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서신교환 및 방문과 같은 인도주의적 문제가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체제취약서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계속 소극적 입장을 견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금년 하반기에 들어서면 우리 사회에서는 본격적인 대선정국이 전개될 것이다. 이에 따라 통일논의가 가열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내에서 통일문제가 여야간의 첨예한 정치쟁점이 될 경우 북한은 이를 공세적인 통일전선전술에 활용할 것이다.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의 정치쟁점화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관계는 소걸음에서 배울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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