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원高시대'에 대비하라
김형기
환율 움직임이 요란스럽다.
불과 한달 전까지도 원화환율이 하염없이 흘러내릴 것 같더니 최근 며칠 동안은 다시 반등하는 양상이다.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환율 적정선이 지켜지는 듯한 모습이어서 안도하겠지만 마냥 넋 놓고 있기에는 흐름 자체가 명쾌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환율 추이는 일시적인 와류현상일 수 있다.
마치 물길이 열렸을 때 많은 물이 한곳으로 몰려나가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들이 아주 잠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당장에는 원화가 약세를 보이겠지만 이는 단기적인 '힘의 쏠림' 때문이지 중장기적인 역학구조를 본다면 강세를 띨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외환시장의 구조가 국내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경제의 내부구조가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자칫 우리의 시각에서 외환시장을 바라보다간 사태를 거꾸로 읽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 쌍둥이 적자 심각하게 인식하라
아주 생뚱맞은 설문이지만 최근 미국 워싱턴 소재 러셀인베스트먼트 그룹이 월가의 주요 투자기관 펀드매니저 97명을 대상으로 향후 포트폴리오 구성 계획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훨씬 넘는 61%의 사람들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 투자하는 것이 유망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특히 미국 달러화 가치 하락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달러약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이머징마켓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쉽게 말해서 지금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불안하니까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피해가야 한다는 말이다.
되짚어 곰곰이 따져보자.
원화가치가 1달러당 1,000원 선 밑으로 하락하면서 초강세를 띠다가 약세로 돌아선 시점은 대략 20여일쯤 전인 지난 3월10일부터다. 이 시기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상시킨 시점과 맞아 떨어진다.
보다 정확한 시점은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날 외교문제평의회(CFR)에서 '세계화'를 주제로 연설을 하면서 "경상수지 문제로 인한 금융시장 위기는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장기 경상수지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미국의 연방 재정적자에 대해서도 "우려스럽다"고 직접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같은 경고는 당장에는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보였다. 이 때문에 원화환율이 단기 약세를 보였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금리인상보다도 미국경제의 위기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수순은 미국 달러약세.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권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미국경제 위기 및 약달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 대응책 서둘러라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다. 대부분 국가 외환위기 이후 환충격에 놀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방어막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기 충격에 대한 보완책 수준이지 중장기 기조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은 아니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기업가는 이와 관련, "체질을 개선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만큼 기업의 환율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현 시점에서 묘수가 없다는 의미다.
사실 일본의 사례를 살펴봐도 단기 테크닉으로 환율파고를 넘어선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현명관 전 전경련상근 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의 환율방어 능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국가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지만 이것을 까뒤집어보면 결국 환율 도움과 금리 도움,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 절대적이다. 97년의 상황(환율과 금리, 조직규모)으로 되돌아갔을 때 국내 기업 가운데 지금처럼 휘파람을 불 수 있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지금은 원달러 환율이 약세로 돌아섰다고 안심할 시점이 아니라 1달러당 800~900원에도 버틸 수 있는 새로운 체질로 변신하는 노력을 서두를 시점이다.
자칫 "이 흐름이 아닌데"하면서 허둥대다가는 다시 한번 한국경제는 암울한 침체의 늪에서 수년간을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kkim@sed.co.kr
입력시간 : 2005-03-31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