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기행 건축은 문화다] <8> 논현동 '팍스 타워'

윤토현 ㈜건축사사무소 지이 소장
용적률 규제 역이용 층마다 새로운 공간창출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건축가는 수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건물의 용도와 건물주의 요구, 건축가 자신만의 예술적 혼(魂)과 현실적인 법규 등 촘촘하게 얽힌 조건들을 충족시킨 후에야 건축물이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강남구 논현동 언주로 ‘팍스타워(PAX TOWER)’는 건축법상 복잡한 규제에 얽매여 오히려 더욱 독창적으로 꾸며질 수밖에 없었던 ‘규제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팍스타워의 설계자인 윤토현 ㈜건축사사무소 지이 소장은 “용적률을 맞추기 위해 설계상 숱한 ‘파내기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팍스타워의 상징이 되어버린 건물 상층부 중앙의 뻥 뚫린 직사각형 공간도 사실은 ‘용적률을 줄이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팍스타워의 대지면적은 4만여평이지만 5개의 필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 언주로와 인접한 일부분만이 800%의 용적률이 적용되는 상업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주택가와 인접한 뒷부분의 필지는 주거지역의 용적률을 적용받아 건축상 제약이 많은 상태였다. 결국 윤 소장은 상업용지 부분에 15층 높이의 타워를 세우고 건물 뒤편에 5층 높이의 작은 타워를 세워 각 동을 브리지로 연결했다. 건물 상층부의 빈공간을 비롯해 1층 중앙 정원과 지하 4층까지 채광이 통하도록 만든 오픈 데크, 건물 내부 곳곳을 복층으로 꾸미는 등 최대한 바닥 넓이를 줄였다. 덕분에 팍스타워는 건물 전체의 채광률이 높고 각 층마다 다른 형태의 공간을 지니고 있다. 깎아 오르듯 하늘로 치솟은 건물의 사선도 필지 모양을 따라서 설계된 것이지만 딱딱한 직사각형 건물보다 산뜻하고 동적인 느낌이 연출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설계자의 설명이다. 아파트와 업무시설, 호텔과 저층 건물 등이 뒤섞여 산발적인 모습을 지닌 언주로의 특성을 감안, 건물 외부는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투명유리로 마감해 단순하고 가벼운 느낌이 들도록 설계됐다. 윤 소장은 “필지 특성상 건물 고층부가 도로변으로 쏠려 자칫하면 답답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며 “단순한 디자인과 투명 유리를 사용한 마감재 등 건물이 도드라지는 느낌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팍스타워는 독특한 설계와 각 층마다 독립된 공간활용이 가능한 장점 등으로 창의성을 요하는 영화사, 잡지사, 애니메이션 회사 등의 사무실이 많이 입주해 있다. 윤 소장은 “규제를 역으로 이용해 디자인에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조형 창출이 가능했다”며 “처음 의도와 다른 중앙정원과 실내 테라스 등 풍성한 공간들이 조성된 것이 팍스타워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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