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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벽두부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퍼지고 있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 추가 제재조치를 내놓았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도 우리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 많아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대화와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소니픽처스 해킹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함에 따라 북미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모처럼 온기(溫氣)가 피어나고 있는 남북관계에 다시 먹구름을 드리우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중단된 고위급접촉, 부문별 대화 등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 인정 △북한 인권문제 불간섭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우리 정부가 수용하기 힘든 내용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남북이 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이야말로 대화와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적기(適期)라는 총론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세부 실행방안과 각론을 놓고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셈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 추가조치, 남북관계 '찬물'=북한에 대한 미국의 추가 제재조치는 실효성을 떠나 모처럼 해빙무드를 보이고 있는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3일 "미국의 대조선 제재조치는 민족화해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북과 남의 대화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며 "통일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천명한 당국자의 새해 인사가 빈말이 아니라면 미국의 오만무례한 간섭을 반대하고 배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년사를 통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미국과 우리 정부가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언제든지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청와대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조심스럽게 문맥을 파악하는 등 신중하게 접근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북미관계도 더욱 경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 정부 대응의 첫 단계라고 강조하며 추가 조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미 정부가 해킹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고 '비례적 대응'을 천명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수준의 상징적 조치가 연이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미관계 냉각이 한미관계 호전에 대한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수용할 수 없는 북한의 신년사 요구=청와대의 또 다른 고민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굳건한 한미관계를 훼손하는 내용을 대거 담고 있고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 신년사는 △핵·경제 병진노선 관철 △무모한 군사훈련 중단(한미 군사훈련)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 중단(북한 인권문제) 등을 남북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요구조건은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 등 해외 다자외교 무대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지지와 협조를 당부한 것이고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대북정책이어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기본 입장이다. 청와대가 2015년을 남북관계 개선의 '골든타임'으로 설정하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북한이 신년사 내용을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고집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은 그야말로 공염불에 그칠 공산도 크다. 결국 청와대는 대북정책 원칙을 지키면서 국제정세에 따라 말과 행동을 달리하는 북한과 관계개선을 도모해야 하는 '이중 딜레마'에 처해 있고 이 같은 어정쩡한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