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사 인수→우량사 탈바꿈 '황금의 손'IMF 경제위기 이후 부실기업 회생을 위한 기업구조조정 수단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가 최근 들어 영세업체 난립에 따른 과당 경쟁과 주식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CRC는 지난 99년 6월 산업발전법이 제정되면서 새로 도입된 제도. CRC는 부실기업을 매입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비핵심사업과 부동산을 매각해 기업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핵심업무는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것이지만 부도 및 화의기업 등 부실기업에 대한 투자, 부실채권 매입, M&A중개 등 부수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CRC는 자체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기도 하지만 100명 한도 내에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펀드(조합)를 모집해 구조조정 작업에 나선다. 지난해 CRC의 직접 투자실적은 2조511억원, 조합을 통한 투자실적은 6,901억원에 달했다.
한때 많은 부실기업들이 구조조정 시장에 쏟아지면서 CRC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부실기업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우량기업으로 회생시킨다는 명분 아래 인수기업을 재매각해 짭짤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우후죽순 영세업체가 난립하고 구조조정시장이 이른바 '끝물'로 치달으면서 CRC업계 자체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 '상투'잡은 영세 CRC업체
IMF 경제위기 직후 기업 매물이 많았을 때는 한 건만 성공해도 수백억원의 이익을 거뜬히 챙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사업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CRC 등록건수는 지난 99년 15개사에서 ▲ 2000년 28개사 ▲ 2001년 42개사 등으로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업체가 뛰어들면서 과당경쟁이 빚어지자 부실기업 인수가격이 턱없이 높아져 매력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규제와 대형사의 출범은 영세 CRC의 퇴출(사업반납)과 합병 등 방향전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CRC 등록건수는 지난 2001년을 정점으로 기록한 후 올들어서는 9월말 현재까지 18개사에 그치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는 지난 4월 영세업체 난립을 막기 위해 CRC의 납입자본금을 30억원에서 70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산업발전법 개정으로 오는 10월까지 새로운 규정에 맞춰 재등록해야하는 기존 94개 등록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업체 55개사 가운데 12개사(21.8%)가 재등록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설문 미응답업체 39개사까지 감안하면 재등록 포기업체는 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재등록을 포기하는 것은 자본금 기준을 강화한 탓도 있지만 업계가 구조조정 시장자체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나 화의 등 구조조정대상기업의 수가 감소하고, 부실 채권시장의 규모가 축소되고 있어 CRC 영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순수 CRC보다는 창투사 등이 CRC를 겸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딜(기업 인수)이 성사되고 있지만 과거 외환위기 때보다 많지 않고, 경쟁도 격화되면서 매물로 나온 대상기업 가격이 많이 비싸졌다"며 "그만큼 수익성도 떨어져 관련 펀드 모집도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 대형사 진출로 업계 구조조정 바람
CRC시장에 은행ㆍ캐피탈 등 금융기관은 물론 골드만삭스 등 해외 유수의 투자은행까지 뛰어들어 업계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앞두고 있다.
지난 7월 기은캐피탈이 등록을 마쳤으며 이달 들어 조흥은행과 골드만삭스의 합작사, 신한캐피탈 등 2개사가 사업을 개시하거나 등록을 마쳤다.
지난해에는 산업은행이 미국계 구조조정 회사인 론스타와 합작해 CRC를 만들었으며 자산관리공사는 캠코LB, SG 등 2개의 CRC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일단 자본력이 풍부한데다 부실 징후기업의 판단, 처리에 경험이 많다는 측면에서 영세 CRC업체보다 유리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 시장이 몇몇 대형 CRC의 과점 상황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업계는 조흥은행과 골드막삭스의 합작사인 C&G 파트너스라는 대형사의 출현이 업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G 파트너스는 대규모 자금조달이 가능하고 현재 남아있는 부실기업이 대한통운, 고려산업개발 등 대형사들이어서 C&G파트너스가 이들 부실기업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최근 기업구조조정사인 '터치스톤캐피탈 파트너스' 등 2개 업체가 수익성 악화로 산자부에 사업등록을 자진 반납하는 등 영세 업체들은 영업 포기 의사를 속속 밝히고 있어 이래 저래 CRC의 자체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병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