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초대석]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

대담=김형기 산업부장 kkim@sed.co.kr
"로드맵 세워 임직원·국민과 비전 공유"
이천공장 증설위해 구리공정 유해성여부 검증중
노조는 하이닉스회생 공신, 더 적극적으로 소통
매각판단은 대주주몫…재무적 투자자 전환도 방법


"3년, 5년으로 나눠 경영 로드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임직원과 주주, 그리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이닉스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취임 한달을 맞은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지난 3월30일 취임 이전부터 주주총회,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으로 해외 고객사 미팅까지 숨가쁘게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는 최근 임직원들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대사면을 단행하면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김 사장은 "황무지 같은 땅에서 자동차와 조선소를 시작하고 반도체를 시작했던 과거의 도전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새로운 먹을거리는 계속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하이닉스도 미래환경 분석기능을 강화하고 장기적 성장을 위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채권단 관리라는 기나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난 하이닉스호의 선장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김 사장을 1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경영현황 및 향후계획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까다로운 질문부터 하지요. 이천공장 증설 논란이 뜨겁습니다. 최근에는 반도체 가공능력과 관련해 구리공정을 채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란이 확산되는 모습입니다만. ▦이천공장 증설 여부는 CEO로서 첫 과제이자 하이닉스의 10년, 20년을 결정짓는 핵심 현안입니다. 취임 전부터 이 문제를 꼼꼼하게 검토했습니다. 현재 이슈가 되는 공장 증설, 구리공정 채택 여부는 결국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감을 어떻게 불식시키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때문에 취임 즉시 임직원들에게 시민단체가 와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환경기준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19개 특정 유해물질뿐 아니라 35개 물질까지도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자체 기준과 설비를 갖추기 위해 내부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습니다. 특히 구리공정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서는 권위 있는 전문가 집단에 철저한 검증을 요청하는 외부용역까지 맡겼습니다. 아마도 오는 6월 말에는 구체적인 결과가 발표될 것입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환경부나 환경단체의 반발에 대한 무마용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올 법한데요. ▦(이 대목에서 김 사장은 가볍게 웃었다) 오해한다면 끝이 없겠지만, 저 역시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환경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지난번에는 구리공정 허용문제뿐 아니라 현공정에 입지를 넓히는 두 가지 요청을 동시에 했습니다. 환경오염이 걱정돼 정히 구리공정이 어렵다면 구리를 쓰지 않는 공정을 이천에 증설하는 것을 검토하겠습니다. 정부의 걱정도 덜고 회사로서도 투자시기를 놓치지 않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외부 용역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정부나 환경단체가) 판단을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업의 핵심은 사람인데 하이닉스 임직원들은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사기가 많이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수긍합니다. 이 때문에 우선적으로 현장근로자에게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주려고 합니다. 임직원에게도 성과에 따른 처우보상체계를 도입해 경영 과실의 일정분을 건네줄 계획입니다. 이 참에 노동조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이닉스 노조는 회사가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던 '회생의 공신'이자 '감춰진 경쟁력'입니다. 이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생각입니다. 일전에 임직원들과 워크숍을 가진 자리에서 노사팀장을 하겠다고 밝혔던 것도 노조와 격의없이 소통하기 위해서입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다 해줄 수는 없어도 듣기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낙관적이십니다. 하이닉스는 핵심 인재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기술 투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요. CEO로서 하이닉스를 다시 파악한 결과 상당 기간 인력과 기술을 보강할 필요가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위기의 터널을 지나면서 핵심 인재들이 빠져나가 미래 경쟁력이 취약해졌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빠져나가면서 기술유출도 현실화하고 있더군요. -중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 반도체 산업의 빠른 도약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하이닉스에 가장 위협적일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하이닉스가 이천공장 증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것이라고까지 하시는데 이는 우리의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하시는 말씀이지요. 현재 진행하는 중국 투자는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김 사장은 기본적으로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샌드위치ㆍ넛크래커라고 보기보다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하이닉스를 굳이 매각하지 않고 경영하는 방안, 예를 들어 포스코식 경영구조도 한때 검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다소 까다로운 문제지만 주저하지 않고 답변했다) 채권은행 일부는 팔자, 또 다른 일부는 놓아두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회사가 좋아지다 보니 재무적 투자자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하이닉스는 테스크포스를 구성해 최선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회사 매각은 전적으로 대주주의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재무적 투자자로 전환한 채권은행을 위한 배당 등도 계획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채권은행의 지분 매각과 상관없이 회사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년 4조~5조원의 투자가 지속돼야 하는 만큼 당장 배당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기반이 탄탄해진다면 어느 회사보다도 높은 주주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배당도 검토되겠지요. -바쁜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는 등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사장을 맡아 제2의 창업을 선포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소감 한 말씀 해주시지요. ▦하이닉스는 산업자원부 재직 시절부터 우연이기는 했지만 인연이 많은 회사입니다.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 상계관세, 중국 투자, 공장증설 등 다양한 이슈와 관련해 참여할 기회가 많이 있었고 때로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시절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직원들이 노력을 많이 했다는 것을 정부에 있을 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시절을 용기 있게 헤쳐나왔던 임직원들과 함께 '제2의 창업'을 하려 합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경영로드맵 어떤 내용일까
R&D서 지배구조개선까지 망라…4년뒤 반도체 세계3위 청사진
취임 100일 후 김종갑 사장이 내놓을 경영 로드맵은 뭘까. 김 사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 이어 이번 대담에서도 취임 100일이 지나면 중장기 경영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임직원ㆍ주주 및 일반 국민들과도 하이닉스의 미래 비전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장단기 비전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경영 로드맵을 3년, 5년으로 나눴다"며 "경영 로드맵을 통해 하이닉스를 4년 뒤 세계 3위의 반도체 회사로 올려놓겠다"고 귀띔했다. 철저하게 계획된 경영전략을 바탕으로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와 일본 도시바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들을 제치고 인텔ㆍ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3위의 반도체 업체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담을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의 경영 로드맵에는 ▦연구개발(R&D) 방향 ▦설비증설 계획 ▦사내혁신 추진계획 ▦지배구조 개선대책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특히 옛 채권단으로 구성된 주식관리협의회의 지분매각과 관련해서도 하이닉스의 구성원으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사장은 하이닉스의 미래를 위한 전략도 경영 로드맵에 포함할 계획이다. 전략적 제휴를 통한 시장 공략, 기술 리더십 확보, 비메모리 등 사업 분야 확대 등 미래 수익원 확보를 위한 전략도 마련할 방침이다. 김 사장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내부적인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이닉스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할 수 있는 국내외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현재 하이닉스 생산품목이 D램ㆍ낸드플래시로 단순한 만큼 P램과 비메모리 등으로 제품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 라인인 팹 없이 설계만 하는 샌디스크와 합작법인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것도 전략적 제휴를 통한 시장확대 방안의 하나다. 또 지난 2004년 10월 비메모리사업부를 매그나칩으로 떼어낼 당시 맺은 비메모리 사업 겸영금지계약도 오는 10월 만료되는 만큼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갑 사장은] 잘나가던 '혁신관료'서 CEO로 '혁신하는 행정가에서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CEO로.' 김종갑 사장은 31년간 정부 요직을 거친 행정 전문가다. 소위 잘나가는 공무원이었던 셈이다. 통상전문가로도 꼽혔던 김 사장은 슈퍼301조 등 대미 통상에 능통했다. 지난 87년부터 6년 동안 상공부 통상협력담당관으로 미국 생활을 했을 때 전문성을 쌓았다. 국외 경험을 통해 국제기준이 몸에 밴 그는 '국제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특허청장과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내며 합리적 판단과 온화한 성품을 바탕으로 한 그의 '화합형' 업무 스타일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줄서기 문화를 철저히 배제하고 능력과 실적만으로 평가하는 인사로도 정평이 나 있다. 76년 공직에 입문한 그는 89∼93년 미국 허드슨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내며 국제관계의 시야를 넓혔다. 이후 통상산업부 미주통상과장과 통상협력국장ㆍ국제산업협력국장을 거쳤으며 산업정책국장과 기술국장 등을 지내는 등 산업 및 통상정책 분야를 두루 섭렵, 국내 산업정책 전반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췄다. 산자부 국장 재직 시절에는 산업집적활성화법을 제정하고 이를 토대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균형발전시책 입안 실무를 총괄한 브레인으로 통했다. 김 사장만큼 기업을 잘 이해하는 관료 출신도 드물다. 기업 현장을 1,000회 이상 방문해 애로사항을 직접 들었다. 특허청장 시절에는 기업 혁신기법인 6시그마, 균형평가제도(BSC), 24시간 민원 서비스 등을 도입해 2005년 행정기관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 사장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좋아한다. 이해하지 못한 부문은 공부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집념도 가지고 있다. 공부하는 CEO가 되겠다고 취임 초부터 해온 말도 이런 맥락이다. 최근에는 '지금은 전문경영인 시대(서두칠 동원시스템즈 부회장)'와 'IBM 한국 보고서'를 탐독하고 있다. 부채 6,000억원의 한국전기초자를 3년 만에 순이익 1,700억으로 바꾸어놓은 CEO 서두칠의 혁신 보고서는 앞으로 그의 하아닉스 경영에 참고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IBM 한국 보고서'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기회로 삼아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7가지 혁신방안을 제시한 책이어서 하이닉스의 변화를 고민하는 김 사장이 손에서 놓지 않을 참고서다. 김 사장은 부인 박화영씨와 원재ㆍ원영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약력 ▦51년 경북 안동 ▦69년 대구상고 졸업 ▦74년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83년 뉴욕대 경영대학원 석사 ▦75년 행정고시 17회 ▦87년 상공부 통상협력담당관(미국과장) ▦94년 상공자원부 통상정책과장 ▦2003년 산업자원부 기술국ㆍ정책국장 ▦2004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2006년 특허청 청장 ▦2007년 산업자원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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