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위독한 사람에게 받은 구술유언장 무효"

큰며느리를 못 알아볼 정도로 생명이 위독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미리 작성된 유언장에 내용에 대한 질문에 ‘음’‘어’ 정도의 대답만 했다면 그 유언장은 효력이 있을까. 대법원은 이에 대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1부(주심 현철 대법관)는 14일 중견기업 W사 창업주의 손녀인 정모씨 등 2명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후처에게 전재산을 물려주기로 한 유언장은 무효”라며 유언집행자 나모씨를 상대로 낸 유언 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망인(亡人)은 병과 고령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변호사가 불러주는 내용에 ‘음’, ‘어’정도의 말로 대답하는 등 유언장을 작성한 경위, 후처 배모씨 외의 유족을 상속에서 완전 배제하는 내용 등에 비춰볼 때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망인이 유언 취지의 확인을 구하는 변호사의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간단하게 말한 것만으로는 민법에 규정한 ‘구수증서(口授證書)에 의한 유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유언 취지의 구수는 말로써 유언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며 “망인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사실 등을 감안할 때 유언장은 무효”라고 설명했다. 구수증서 유언이란 유언자가 질병 등 급박한 이유로 자필증서나 녹음ㆍ공정증서ㆍ비밀증서로 유언장을 작성할 수 없는 경우 2명 이상의 증인에게 유언을 구술(口述)하고 이를 받아적은 증인이 낭독해 유언자의 서명이나 날인을 받는 방식의 유언이다. W사 창업주인 정모씨는 위암 등으로 위독하던 지난 1998년 1월 병원 입원실에서 변호사와 회사직원, 운전기사 등이 입회한 가운데 변호사 1명이 유언서에 들어갈 내용을 불러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 ‘어’하고 대답해 회사 3개와 토지ㆍ건물ㆍ선산ㆍ예금 등 전재산을 후처에게 물려주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이틀 뒤 숨졌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