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논쟁은 잠시의 유행을 넘어 어느덧 대세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그런데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의 관계는 참 미묘하다. 금융소비자는 금융상품을 구매할 때까지는 '갑'으로 대접받았는데 구매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을'이 됐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난해한 금융상품 소비자 을로 취급
기본적으로 금융상품은 간단한 설명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성이 있어 일반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와 같은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갖추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산 고객이 을이 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러한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 간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금융감독원이다.
이런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금융소비자를 을로 만드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소위 '슈퍼 갑'으로 활동해주기를 금융소비자 모두가 바랄 것이다. 금감원은 이러한 자세로 지난해 5월 원장 직속의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신설했고 올해 조직 확대 개편과 더불어 처장을 시장에서 영입하는 등 금융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금융감독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통합감독기구로서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보호 부문과 감독ㆍ검사 부문, 그리고 외부 위원들도 참여하는 심의기구를 설치해 금감원 내의 유기적인 협력과 환류를 통한 시너지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금융소비자와 관계된 것은 무엇이든 금융소비자보호처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시행이 불가능하도록 했고 민원 제기를 통해 알게 된 소비자보호를 저해하는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을 찾아내 개선하고 있다. 최근에 확정된 '국민검사청구제도'의 도입도 여기서 이뤄진 것으로 이는 금융소비자의 시각에서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검사를 실시하도록 당사자가 직접 금감원에 검사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소비자보호의 시작이랄 수 있는 현명한 금융소비자를 육성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여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생업에 바쁜 서민들을 위해 새벽 인력시장 방문 등 직접 찾아가는 금융 상담 서비스를 강화할 것이다.
시스템 개선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금융소비자들이 '금감원이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구나' 하고 체감할 정도의 진정성을 갖는 소비자보호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의 기본 자세이다.
금융회사도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7월에 '소비자보호 모범규준'이 개정되면 금융회사에도 소비자보호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가진 금융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가 임명될 것이다. 금융회사는 총괄책임자를 중심으로 상품 개발, 판매, 사후관리에 걸친 전 단계별 소비자보호 역량을 강화해야 하며 소비자보호가 취약할 경우 금감원 내 전담 민원관리자의 밀착 관리와 더불어 건전성 감독과 연계한 관리를 받게 될 것이다.
수요자 중심 금융환경으로 바꿔야
이 밖에도 금감원은 매월 원장이 직접 주관하는 '민원점검의 날'을 운영하고 금융회사 임직원이 참여하는 합동 워크숍을 실시하는 등 금융소비자가 철저히 보호받는 금융 환경 조성을 위해 솔선수범할 것이다.
이와 같은 기구 신설이나 기능 확대와 같은 금감원 주도의 시스템 구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현장을 잘 아는 소비자단체나 이론을 갖춘 학계와의 협업을 통해 '민간ㆍ학계ㆍ감독당국'이 함께 해나가는 형태에 중점을 두고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그리하여 공급자 중심의 소비자보호가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소비자보호를 굳건히 해나갈 것이다.
지금은 안팎으로 금융소비자보호를 내세우는 분위기라 금감원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보호 중시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강화의 초석이며 자연스럽고 커다란 물줄기처럼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지금은 많은 관심과 격려, 그리고 발전적 제언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