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우리은행은 인터넷뱅킹을 할 때 지문으로 본인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을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문인식 마우스에 손을 대면 고객이 미리 등록한 지문과 같은지를 식별하는 방식이었다. 잔액조회는 손가락 한 개, 계좌이체는 손가락 두 개의 지문이 필요했다.
생체인식을 금융에 접목한 '바이오금융 서비스'의 시작을 알리는 시도여서 전 금융권이 주목했다. 우리은행은 이 획기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2003년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지문으로 계좌조회·이체가 가능한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이 같은 시도는 전면적인 상용화까지 연결되지 못했다. 생체정보를 받아들일 만한 시장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당시 우리은행의 바이오금융 서비스 사업을 주도하던 김종완 우리에프아이에스 사장은 "무엇보다 휴대폰이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생체인식에 관한 기술적인 시도는 많이 이뤄졌지만 대중성이 부족해 활성화되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논의에 장이 다시 열렸다.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기, 인터넷전문은행 본인확인 절차 다각화, 핀테크(fintech·기술과 금융의 합성어) 활성화 등의 논의가 무르익자 금융결제원을 중심으로 시중은행들이 바이오금융 서비스 도입에 관한 탐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팬택·삼성·애플 등 굴지의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지문인식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바이오금융 서비스 시장의 활로를 열어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올해 안에 지문인식 ATM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바이오금융 서비스가 생체정보를 활용하는 사업이어서 성공 여부는 역시 '보안'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바이오금융 서비스…지문·ATM이 활용도 높아=생체인식은 인간의 신체 일부나 행동 특성을 통해 본인 여부를 판별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지문·홍채·정맥 등을 활용한다. 정맥인식도 손바닥·손가락·손등 등 부위에 따라 다를 정도로 세분화돼 있다. 또 얼굴 모습, 활동적 특징 등도 포함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 세계 약 121개국의 은행에서 바이오금융 서비스를 ATM·창구거래·인터넷뱅킹 등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식 정확도와 속도 개선을 위해 정맥인식 기반 ATM, 음성인식 기반 텔레뱅킹 서비스가 확대되는 추세다.
종류별로 보면 지문이 전 세계 금융 서비스에 적용된 바이오인식 기술 중 약 48%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손가락 정맥은 12.3%, 음성인식 11.5%, 손바닥 정맥 9%, 홍채인식 7.4%, 손금 4.9%, 안면인식 3.3% 등의 순이다. 금융 서비스별로는 역시 ATM이 45%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창구거래(22%), 인터넷뱅킹(10%), 텔레뱅킹(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일부 시중은행들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도 ATM에서의 지문거래 방식이다. 최근 보이스피싱·파밍 등 금융거래 사기가 활개를 치는 시점에서 지문으로 ATM 인증을 하도록 하면 보안성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또 자동응답서비스(ARS)에서의 음성인식 인증도 적극 논의되고 있다.
◇국내 바이오금융 서비스 시도는 다양하지만…=국내에서는 비단 우리은행의 사례뿐만 아니라 바이오금융 서비스에 대한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지문인식을 통한 출입통제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또 영업점 지점장 승인 결제에서도 바이오금융 서비스가 이용되고 있다. 향후 이 기술을 지문인식 ATM 등에 적용해 대고객 본인확인 절차에 적용하겠다는 복안이다.
금융결제원의 한 관계자는 "지문인식 ATM이 가장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수단이다. 다만 혼자서 이용할 경우 파급력은 크지 않다. 바이오정보를 은행과 금융결제원이 분산 보유해 A은행 고객이 B은행 ATM에서 서비스 이용접근을 해와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BC카드는 보안성이 취약한 패스워드 입력 대신 지문·얼굴인식 등을 인증수단으로 사용하는 FIDO(Fast IDentity Online) 기술이 적용된 결제수단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9년 신한카드가 지문인식 신용카드를 선보이며 도입했던 센서온카드도 좋은 예다. 인식단말기·인증모듈·바이오정보가 모두 하나의 IC카드에 저장되는 방식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IC단말기 보급 문제가 아직도 진행형인데다 바이오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IC카드가 약 3만원 정도로 일반 IC카드 대비 15배가량 비싸다는 점은 상용화의 걸림돌이다.
◇홍채·지문정보 털리면 '가상의 나' 복제되는 셈… 성패는 '보안'=이처럼 생체인식 기술의 상용화는 업권을 망라하고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실제 지난 사전선거 때는 본인확인용으로 지문인식기에 지문을 찍었던 것이 대국민을 상대로 상용화된 실례다. 하지만 생체정보가 금융과 접목해 바이오금융 서비스로 한 단계 진화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보안이 필수적이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지문이나 생체가 돌아다니면 난감하다. 생체정보가 복제돼 내가 10명, 100명씩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금융 서비스가 활성화되려면 보안이 전제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생체인식 성공률이 낮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윤종문 여신금융협회 선임조사역은 "얼굴인식 성공률은 96%다. 높다고 볼 수 있지만 국내 카드 부정사용률은 0.001%로 낮다. 이 정도 수준 이하로 완벽한 기술이 돼야만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생체인식 기술이 100% 완벽한 기술이라고 할 수 없어 본인인증 수단으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해외의 사례를 봐도 생체인증은 보완수단에 불과하다. 보편적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금융바이오 서비스 시장이 성숙돼 시도는 해볼 만하지만 생체인증이 고객들 입장에서 너도나도 쓸 수 있는 보편적 본인확인 수단으로 자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