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 포기하고 알바로 돈 벌래요

취업 안돼 가족·친지 눈치 볼바엔…
떡집·스키장 등 모집광고 나오자마자 마감… 일당은 6만~8만원 짭짤

"취업도 못했는데 고향에 가봐야 가족 눈치만 보이고 왔다 갔다 차비만 쓰느니 차라리 생활비라도 버는 게 낫죠."

취업준비생 신모(29)씨는 며칠 전 이번 설에 하루라도 좋으니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았으나 급한 일이 생겼다며 얼버무렸다. 경비는 대줄 테니 스키장에 놀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도 마다했다. 대신 그는 일당 7만원을 주는 떡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신씨는 "취업도 안 됐는데 가족ㆍ친구들과 어울려 명절 기분 낼 때가 아니다"라며 "명절 때 생활비라도 벌어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게 내 마음도 편하다"고 말했다.

이번 설 연휴가 사흘로 짧은데다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아 귀성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구직자들이 많다. 8일 취업 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3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14%가 설 연휴 고향에 가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대답했다. 이 가운데 30.4%는 설 연휴에만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다.

설 단기 아르바이트는 일당이 6만~8만원으로 평소보다 2만~3만원가량 높아 짧은 시간에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중에서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ㆍ잡화점에서 상품을 팔거나 진열하는 일은 비교적 편한 것으로 알려져 모집광고가 나오자마자 금세 충원된다. 이 기회를 놓친 아르바이트 지원생들은 노동강도가 상대적으로 센 떡집ㆍ주차장을 찾거나 스키장과 고속도로 휴게소, 모텔 청소 등을 지원하고 있다.

연휴 기간 대형마트 주차요원으로 일하기로 한 정모(23)씨는 "연휴가 사흘밖에 안 되고 바로 중국어학원 수업이 시작돼 광주 집까지 다녀올 생각을 접었다"며 "좀 춥기는 하지만 짧게나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원비라도 벌어볼 생각"이라고 계획을 소개했다.

일부 아르바이트생들은 설 연휴 특별수당을 더 주지 않는데도 그냥 일한다. 서울 마포구의 부침개전문점에서 일하는 장민경(22)씨는 "설 연휴 기간에는 주문량이 폭주해 밤새 일해야 하기 때문에 웃돈을 받지 않아도 버는 돈이 많아진다"며 "일은 고되고 남들 놀 때 일하는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귀성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서는 대신 자격증 공부나 봉사활동 등 스펙 쌓기에 전념하는 구직자들도 있다.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는 이모(27)씨는 "공부 때문에 명절을 달력에서 지운 지 오래"라며 "어렸을 때는 명절이 신나고 기다려졌는데 최근 몇 년을 살펴보면 나나 친구들 모두 쓸쓸한 명절을 보내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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