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 차기 KB금융 회장 내정자는 민관의 경험을 두루 쌓아온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이 때문에 올 초부터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꼽혀왔고 정통 내부 출신 인사들과의 치열한 경합을 물리치고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민간 금융기관의 수장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임 내정자는 최종면접 직전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주 회장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기능과 연계되는 정책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중요하다"며 "민관을 모두 거쳐 전략적 사고와 비전 제시에 자신 있다"고 밝혔다.
임 내정자는 젊은 시절 대부분을 공직에서 보냈다. 지난 1977년 행정고시 20회로 공직에 올라 경제부처에서 자금시장과장, 은행제도과장, 금융정책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기획재정부 2차관이 마지막 공직 이력이다.
특히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 수립과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등을 주도했으며 참여정부 들어 실시한 국장급 교류 1기로 외교부 다자통상국장을 맡아 한ㆍ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을 조기 타결시키기도 했다. 현재 강원도 출신 재경 고위공직자 모임인 '강우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신용불량자 대책을 마련할 때는 정책과 별개로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바꾸자고 주장해 신선한 주목을 받았다. 재무 관료로는 드물게 국문학도 출신으로 대학 시절에는 봉산탈춤 등 양반을 풍자하는 해학을 담은 것들에 심취했다고 한다.
실제 금융정책국장 시절 집무실 벽에 민화를 가득 진열해놓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런 그의 기질은 공무원들이 보다 서비스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소신으로 이어졌다.
그가 금융ㆍ경제 관료로서 주요 업무를 맡아 뛰어난 성과를 낸 데는 이런 철학이 배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려했던 공직 생활 이후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2008년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을 거쳐 2010년 KB금융 사장으로 KB금융에 합류했다. 2008년 산업은행 총재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로 하마평이 잦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민간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은 50대 중반이 넘어서다. KB국민은행 노조에서 "그가 정말 내부 출신이냐"고 시비를 거는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나를 외부인이라고 한다면 정말 섭섭하다"며 KB맨으로 이미 융화가 다 됐다고 말했다.
KB금융에서는 회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가려 조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B금융 관계자는 "말투도 조용조용하고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최고경영자(CEO)"라며 "하지만 공무원 시절의 이력을 보면 강단 있는 분이지 않느냐. 2인자가 갖는 한계"라고 말했다.
그가 평소 생활신조로 여기는 문구는 불교 선종의 대가인 임제 스님이 설법하신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어디에 있든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참된 곳이라는 의미다.
임 내정자의 민관을 두루 포괄하는 정체성과 견줘보면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금융계에서는 임 내정자의 폭넓은 인맥과 행정 경험이 우리금융 매각 이슈와 얽혀 있는 상황에서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방은행 등 우리금융 자회사를 분리매각한 뒤 우리은행을 KB금융과 합병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금융 당국과 손발이 맞는 수장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노조와의 관계를 원만히 가져가는 것 외에 다른 과제도 산적해 있다.
KB금융은 다른 지주에 비해 은행의 자산 비중이 90% 수준으로 지나치게 높다.
또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1%도 안 돼 신한ㆍ우리ㆍ하나 등과 비교할 때 가장 낮다. 불황과 저금리로 은행의 수익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 취약한 해외 네트워크를 보완하고 뱅킹으로 쏠린 수익사업을 손봐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