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92> 탑골공원


우연이 바뀌어 필연으로 되는 경우가 세상에는 많다. 1919년 3·1운동과 정재용(1886~1976)의 관계가 그렇다. 황해도 해주출신으로 서울 연지동에 있던 경신학당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정재용은 당시 서울에 와 있다가, 지인으로부터 인쇄물 한 보따리를 서울역으로 운반해서 지방에 부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독립선언서였다. 그는 인쇄물 가운데 한 장을 빼서 주머니에 넣고 탑골공원으로 갔다. 탑골공원에는 이미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시위를 이끌 이른바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아 혼란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계속 흘렀고 오후2시가 지나면서 흥분은 극에 달했다. 이때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 올라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3·1운동의 시작이다. 그는 시위를 주도하지 않았지만 지도부와 익숙한 사이였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은 그가 수학한 경신학당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났었다. 사진은 탑골공원 팔각정이다. 탑골공원의 이름은 뒤쪽 유리 속에 보이는 원각사지10층 석탑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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