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가파른 하락…수출 채산성 악화

원-달러 환율이 급락을 계속함에 따라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환율 하락으로 수익이 감소하자 연구개발 및 투자 부진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중소기업들은 출혈수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930원선이 붕괴되자 수출기업들은 환율이 회복되기는 커녕 급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업계는 원화는 대폭적으로 급락을 계속하고 있는 반면 엔화, 유로화 등 주요국 환율은 보합 또는 소폭 하락에 그침으로써 세계 수출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더 떨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원-달러 환율뿐 아니라 원-엔, 원-유로화 환율도 큰 폭으로 하락해 수출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 업계 '비상' = 정몽구 회장이 구속된 현대.기아차그룹은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내려가면서 위기감이 더해가고 있다. 지난 3월에 환율하락을 반영해 미국에서 팔고 있는 차값을 일부 올렸지만 여전히 환율하락 속도가 너무 가팔라 추가 인상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엔저 상황을 등에 업은 일본업체들은 차값을 동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점유율 하락이 우려돼 가격 인상도 마땅치 않아 고심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환율하락 속도가 우리가 버텨내기에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 가격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올 초 설정했던 평균 환율 950원도 깨진 지 오래다. 사업 계획 수정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이 더지속되면 계획 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환율하락에 대한 중장기 해법으로 현대차그룹이 중점적으로 실시하던 해외공장 건설이 정 회장의 구속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되자 최근 R&D투자도 부진한 실정이다. 전자업체들은 급격한 원화절상에 따라 수출전선과 내수시장에서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분기 수출고가 100억 달러를 넘는 삼성전자조차도 가파른 환율 하락세에 맥없이 당하고만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휴대폰, 디지털TV, 냉장고 등 세트제품은 물론이고 반도체와 LCD 분야에서도 일본, 대만업체들과 힘겨운 수출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환율 하락폭이 워낙 크고 가팔라 결제통화 다변화 등 리스크 분산 차원의 단기대응마저도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달초 윤종용 부회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환율 하락세에 대해 "전혀 예측이 안된다"고 고개를 내저었을 정도다. 원-달러 환율만 고려할 경우 삼성전자는 연간 환율이 100원 하락할 경우 영업이익이 무려 2조원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1.4분기에는 2천억-3천억원의 영업이익이 환율의 영향으로 사라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의 분석에 따르면 일반 기계의 환율 손익 분기점은 달러당 972원으로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수출이 8.2% 감소하게된다. 달러당 930원대마저 무너짐에 따라 대부분의 기계업체가 수출 채산성 악화를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수출비중이 70%에 이르는 화섬업계도 계속된 환율 하락으로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원가 절감, 수익성 다변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화섬업체들은 또 앞으로도 환율 하락이 지속될 것에 대비해 중장기적 차원에서 전통 화섬에서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사업구조를 바꾸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 수출 채산성 악화 = 최근 환율은 수출 기업이 바라는 환율 수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은 물론 한국 경제의 기초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하락함으로써 업계의수출 채산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때문에 수출 채산성은 2004년 4.4분기 이후 올해 1.4분기까지 6분기 연속 악화됐다. 이는 무엇보다 환율 급락으로 인해 원화표시 수출단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품질경쟁력 향상과 대기업 수출 비중의 증가로 과거에 비해 수출이 환율 변동에 덜 민감한 것은 사실이나 최근의 과도한 환율하락은 향후 수출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한국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환율변동에 여전히취약한 실정이다.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수출 채산성이 한계 상황에 도달했거나 적자로 돌아선기업은 지난 2월 이미 88%를 넘어섰다. 업계는 수출 채산성 악화가 지속됨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수출기업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는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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