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산책/4월 24일] 충무공과 46인의 호국영령

오는 4월28일은 충무공 탄신 465주년이 되는 날이다. 역사ㆍ소설ㆍ드라마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된 성웅 이순신은 만물이 소생하는 초록의 향연 중에 태어나셨다. 우리나라가 전후 50여년 앞만 보고 달려온 덕에 조선, 반도체, 자동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됐고 불균형성장은 있지만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오직 이 땅에서만 전개되는 해묵은 냉전의 잔해 앞에 마땅한 변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천안함 침몰사고로 유족과 많은 국민들의 가슴이 아프지만 첨단 디지털시대는 아날로그시대와 중첩돼 있음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시인 T S 엘리엇이 느꼈던 것보다 더 쓰라린 이 4월에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다. '생필즉사 사필즉생' 구국정신 충무공은 탁월한 전략가이자 투철한 군인정신의 화신이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장에서 싸우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전략과 전술에서 승리가 확신되지 않으면 출정명령을 받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계3대첩의 하나로 유명한 한산도대첩의 학익진과 적진포해전의 장사진, 사천해전의 유인작전 등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특히 거북선을 출전시킨 사천해전에서 신출귀몰하며 선체로 들이받고 화포를 쏘아대 왜군을 혼비백산하게 한 전장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고 속이 시원해진다. 공은 정보전략가였으며 바람과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고 바닷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작전을 폈던 해양전문가셨다. 오랑캐를 소탕하다 왼쪽 팔에 화살을 맞았으며 사천해전에서 어깨에 소총이 관통했으나 기사회생해 다음날 출전하셨으며 결국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노량전투에서 진두 지휘하다 왜군의 소총을 맞아 최후의 한마디를 남기고 드라마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전황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장군의 '필생즉사 사필즉생'의 결사구국 정신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표이다. '내일이 부친의 생신이신데, 슬픔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떨어졌다' '병사들이 쇠잔하고 피폐한데 이를 어쩌랴' 난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공은 가슴이 따뜻한 한사람의 인간이었다. 자식의 혼례를 걱정했고 전투 중 막내 아들의 부고를 받았을 때는 '어둘 무렵이 되어 코피를 한 되 남짓이나 흘렸다. 밤에 앉아 생각하며 눈물짓곤 하였다'는 일기처럼 인정 많은 아버지였으며 부인의 병세를 걱정하며 잠 못 이룬 범부였으며 전투 중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서는 불효자의 처지를 통곡했던 효자이셨다. 전시에도 어적보민(禦敵保民)에 더 심중했으니 백의종군할 때는 백성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지었다고 한다. 천안함 함수는 아직도 서해에 머물고 있다. '전역복을 입고 싶다, 시간아 빨리 가라' 이병장의 영원한 기다림, '다음주에 아빠가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있는 여섯살 아이에게는 무어라고 변명해줄까. 슬픔 중에 가장 큰 아픔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이라는데 이제 평생 가슴에 묻고 가야 할 상처를 입은 유족들에게 아들이 돼주고 어려울 땐 이웃이 돼주자. 상처입은 유족 심정 헤아려야 '그대들은 직책을 다하였건만 나는 그런 덕이 모자랐도다'라며 먼저 간 부하들의 넋을 위로하시던 충무공께서 후예를 잃으시고도 말씀이 없으시다.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도 23전23승 불패의 신화 충무공은 광화문광장에서 조용히 바라만 보고 계신다. 이번 비극이 대한민국 국운융성의 전기가 되기만을 바라고 계실까, 장군님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우리 대신 영해 최전선을 지키다 아름답게 산화하신 충무공의 후예 46인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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