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칼럼/8월 23일] 공기업의 구조조정 필요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채 문제로 공기업 부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더구나 공기업들은 대형 국책성 사업을 떠맡는 바람에 부채를 더욱 키웠다. LH 사태를 계기로 공기업 부채가 사실상 국가채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을 공기업에 떠넘김으로써 공기업 부채가 국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공기업의 경우 이자를 갚아야 하는 금융부채가 지난 2009년 말 현재 181조원에 달한다. 2004년의 71조원과 비교할 때 6년새 11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금융부채가 75조원으로 전체 공기업 가운데 가장 많았다.

행정복합도시를 비롯해 혁신도시ㆍ임대아파트ㆍ보금자리주택 사업 등 대규모 국책성 사업들을 떠맡으면서 부채가 급증했다. 이밖에도 공기업들이 앞다퉈 부채를 늘려왔기 때문에 다른 공기업들의 부채 상황도 심각하다. 일부 공기업은 이미 자본을 완전히 잠식한 상태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나 재무구조 악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기업 자체의 특성처럼 '으레 그러려니' 여겼다. 공기업이 아무리 빚더미에 올라도 임직원들은 두둑한 성과급과 각종 복지후생이 보장된 '철밥통', 그래서 '신(神)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정부 역시 경기부양ㆍ개발논리 등을 앞세워 공기업 부채를 늘리는 데 앞장서왔다. 근래에 DJ정권, 노무현의 참여정권은 물론 MB정권도 친서민정책 등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내세우면서 국책성 사업을 공기업에 떠맡겨왔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정권이 국민을 매수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는 국가 재정위기로 귀결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재정 부실화를 은폐하는 대신 공기업 부실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정부는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비교적 양호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까지가 공기업 부채이고 어디까지가 정부 부채인지 구분이 불투명하다. 공기업 부채로 위장한 정부부채, 이것이 정부와 공기업의 비능율과 도덕적 해이를 더욱 키워왔다. 이래서야 정부든 공기업이든 부채관리가 제대로 되겠는가.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과 달리 공기업이 국책사업을 맡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해 국가 부채에 공기업 부채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대강 사업, 녹색성장, 보금자리주택, 미군기지 이전, 세종시 등 천문학적 금액이 소요되는 정부 국책사업들이 대부분 공기업에 떠맡겨져 현실이 호도되고 있다. 공기업 부채가 국가 부채로 포함될 경우 우리나라의 재정상태도 양호하다고 볼 수 없다. 정부는 공기업의 인사에 깊이 간여해왔다. 공기업 민영화가 지연되는 이유도 공기업의 부채 급증 및 정부의 인사 간여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이번에도 LH에 대한 재정 지원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내심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기업에 대한 재정 투입은 정부의 재정건전성 저하 및 도덕적 해이 비난 우려 등 반대 여론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공룡 LH를 빚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현 상태에서 무작정 정부 재정만 투입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우려가 크고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언필칭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다짐만으로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재정 투입에 앞서 LH 등 공기업의 역할 재정립 및 사업구조조정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공기업의 사업 구조조정이란 이미 벌여놓은 사업이나 사업계획의 축소조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기업이 할 일은 공기업이 맡고 국책사업은 정부가 맡는 사업구조조정이 부채관리나 도덕적 해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복지'로 분식(粉飾)해온 포퓰리즘적 사업들을 공기업에 과도하게 떠맡겨온 관행이 공기업의 부채를 더 키운 핵심 요인 중 하나인 만큼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동안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지연시켜온 공기업 민영화도 앞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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