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準戰時'에 방북 경쟁이라니
민병권 기자 newsroom@sed.co.kr
"솔직히 정치권이 개성공단을 아예 입에도 안 올리는 게 투자 기업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핵 긴장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여야 대표가 방북 경쟁을 하면 오히려 미국을 자극해 대북사업 중단 압박이 더 거세질 겁니다."(대북사업 관계자)
18일 오전 국회 브리핑실에서는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이 깜짝 발표를 했다. 당 지도부가 이달 31일께 4박5일간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의 최고위급 당국자와의 만남이 기대되며 그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누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선 지난 17일에는 열린우리당이 돌연 지도부의 개성공단 방문 계획을 발표했다. 20일 김근태 우리당 의장 등이 개성공단을 찾아가 현지 진출 기업인들을 격려하겠다는 취지다.
양당 모두 북핵 위기로 불거진 긴장을 완화시키겠다는 동기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국정의 혼선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우리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실행 문제를 놓고 6자회담 당사국들과 공동의 대응책을 조율하는 민감한 시기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임박설도 나돌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정치인들이 제각각의 방북 성과를 발표하게 되면 우리 정부는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은 '준전시'가 아닌가. 전쟁에 준하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 지도부가 한가롭게 상대국에 진출한 기업을 방문해 격려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민노당도 자성해야 한다. 민노당은 정치권에서 비중 있는 정당이기는 하지만 국정의 책임을 지는 집권당은 아니다. 공식 정부 대표도 아니면서 준전시 상태의 상대 당국자들과 만나 무슨 책임 있는 논의를 하겠다는 것인가.
양당의 방북 경쟁은 국민의 생존이 걸린 북핵 이슈를 정치 주도권 다툼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정치권은 핵 사태와 관련한 대북접촉 채널을 최대한 정부로 일원화해야 한다. 지난 90년대 초 차기 대통령 후보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당시 민주자유당 김영삼 최고위원과 박철언 정무장관이 북방외교 붐을 좇아 러시아 방문 경쟁을 벌였던 사실이 지금 상황과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입력시간 : 2006/10/18 1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