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싸고 동·서 갈등… 유럽 분열되나

이주 늘며 문제 잇따르자 영국 복지혜택 대폭 축소
독일·프랑스도 단속 강화… 동유럽·EU는 강력 반발
극우파 득세할 여지 커져

바호주 EU집행위원장

● 바호주 EU집행위원장
거주이전의 자유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원칙

● 캐머런 영국 총리
동유럽 이주민, 우수한 자국민 해외로 내몰아


이민자를 둘러싼 서유럽과 동유럽 간 갈등이 유럽을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영국이 경제난을 피해 동유럽에서 넘어온 이주자들에 대한 강한 규제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독일ㆍ프랑스 등도 이와 유사한 규제를 추진하자 유럽연합(EU)과 동유럽 국가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이 외국 이민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로 번질 경우 유럽 내 극우파가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득세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7일(현지시간) "EU 이민자에 대한 복지 서비스 문턱을 높이겠다"고 밝혔으며 영국 정부는 ▦이주 3개월 내 실업수당 청구 불가 ▦무직 이주민 주택수당 청구 금지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구걸ㆍ노숙하는 이주민 추방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벌금 4배 인상 등의 이주민 규제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내년 1월부터 이주제한이 풀리는 루마니아ㆍ불가리아 이주민들의 유입을 의식한 조치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도 "이주의 자유가 소득불균형으로 인한 막대한 인구이동을 부추긴다"며 "이에 따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우수한 영국인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캐머런 총리는 28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리는 'EU-동부 파트너십' 정상회의에서 이주자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다.

다른 서유럽 선진국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 연정은 이날 "빈곤에 의한 이주가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강경대응 의사를 밝혔으며 프랑스 집권 사회당 정부도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당사자인 동유럽 국가들과 EU가 발끈했다. 라즐로 안도르 EU 고용부문 집행위원은 "과장된 반응이며 영국이 '형편없는(nasty)' 나라로 보인다"고 지적했고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도 캐머런 총리와 만난 뒤 "거주이전의 자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조약의 기본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루마니아 고위정치인인 모니카 마코베이 유럽의회 의원은 "영국 등이 루마니아ㆍ불가리아 이주민을 받지 않는다면 이들 국가는 싼 생산비 등을 이유로 공장을 지을 권리도 없다"고 반박했다. 콘스탄틴 디미트로프 주영 불가리아대사도 "용납할 수 없는 국가 존엄에 대한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FT는 서유럽 국가들의 이러한 경향이 "동유럽에서 실업 이민자가 몰려들 경우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들에 대한 증오를 먹고 사는 극우파의 발호를 부추길 것이라는 공포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이민자들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뻬잇는다는 인종주의적 '혐오발언(hate speech)'을 일삼는데 실제로 유럽에서는 경기침체에 따른 사회불안으로 '반EU'를 표방한 극우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영국에서는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이 최근 지지도 조사에서 22%로 1위를 차지했고 프랑스에서는 극우파 국민전선의 지지율이 사상 최고 수준인 30%까지 올라 있다.

결국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유럽통합이라는 EU의 기본정신이 정면도전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극우파가 유럽의회에서마저 일정 수준의 지분을 확보할 경우 EU의 통합 노력에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물론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 등이 전면에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호주 위원장은 "극단적 세력에 주도권을 내주는 일이 없도록 친유럽 세력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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