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6월 27일] FRB의 글로벌 인플레 책임

만일 전세계를 아우르는 중앙은행이 있다면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태와 미래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을 고려한 뒤 금리를 인상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은행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은행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다. FRB의 통화정책은 아시아ㆍ중동의 많은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FRB는 이 같은 책임감을 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FRB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FRB의 저금리 정책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FRB의 기준금리는 미국 달러화에 자국의 화폐가치를 연동시킨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금리를 낮추면 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이들 국가의 화폐를 사들이기 위해 달러를 내다 팔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이 상품가격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통화긴축에 늑장을 부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10.4%이지만 기준금리는 아직 8.5%에 불과하다. 필리핀의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기준금리 5%보다 4%포인트 이상 높은 9.6%에 달한다. 인도의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11%에 달하지만 금리는 8.5% 수준이다. 모두 개발도상국인 이들 세 나라는 식품 및 연료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면서 빈곤층의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다. 개도국 중앙은행들은 올 연말에는 유가가 안정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수그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낙관적인 전망은 국민들이 생활고로 임금 상승을 요구하면서 또다시 인플레이션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개도국들의 인플레이션 억제가 실패한 것은 이들 국가가 달러화에 자국 화폐를 고정시킨 페그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더 커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것도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FRB를 포함한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고민이다. FRB는 여기에다 고민해야 할 것이 한가지 더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질수록 아시아 국가들은 금리를 올리려 들 것이고 금리를 올리다 보면 페그제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달러가치의 급락과 미국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달러가 기축통화로 사용됨으로써 혜택을 봤다. FRB는 그 대가로 자신들의 금리정책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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