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조문정국 이후 오는 9월 정기국회부터 조성될 정치 환경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이어 민주정부 10년을 이끈 김 전 대통령마저 서거함에 따라 쟁점 현안과 관련한 여야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서거 이틀째인 19일 박희태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조문하고 모든 정치 일정 중단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장례행사를 총력 지원하면서 정세균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마찬가지로 상주 역할을 자임했다.
◇與, '추도와 현안은 별개'…개혁 속도전으로 정면 돌파=이날 오전 최고ㆍ중진연석회의를 마친 뒤 임시 빈소를 찾은 박 대표는 "큰 정치 거목이 우리 곁을 떠나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거대 정치인이 계속 정계를 지도했으면 좋을 텐데 정말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특히 안상수 원내대표는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권이) 앞으로 서로 통합과 화해를 위해 좋은 정치를 펼쳤으면 한다"며 '국회 일정 협의'를 묻는 질문에 "중지죠"라고 짧게 답했다. 일단 한나라당은 조문정국 후 정치 상황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DJ 서거 국면이 9월 정기국회는 물론이고 10월 재보선과 연계될 경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은 애도와 추도 분위기는 이어가되 쟁점 현안은 분리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야권이 두 전직 대통령 서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면 '국가적 불행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논리로 맞선다는 것이다. 또 선거제도와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속도를 내는 동시에 당ㆍ정ㆍ청 쇄신과 개혁작업을 추진해 야권의 공세를 원천 차단한다는 전략도 세워두고 있다.
◇野, 유리한 정치환경… 단일대오로 공세 강화=미디어법 장외투쟁을 일시 중단한 정 대표는 이날 서울광장 합동 분향소에서 "김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차질 없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의원별로 조를 짜 돌아가며 상주 자격으로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키며 DJ를 이은 민주개혁 진영의 적통이자 새로운 구심점이 민주당이라는 점을 안팎에 두루 알린다는 방침이다.
당내에서는 '민주대통합론'을 역설한 DJ의 유지에 의해 친노신당 창당 움직임 등이 잦아들 것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두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국가적 사건을 계기로 민주개혁 진영이 결집하고 여권에 비해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을 중심으로 민주개혁 진영이 단일대오를 이뤄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에서 강도 높은 대여공세를 펼치고 이를 바탕으로 10월 재보선 승리와 정국 주도권 확보를 자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과 관련한 쟁점을 여권이 주도하면 민주당으로서는 미디어법 투쟁을 포함한 각종 현안에 대한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자칫 전직 대통령 유지를 빌미로 발목만 잡는 야당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