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지주 '경영 공황'… "조기 수습" 앞세워 정·관치 개입 소지

금융감독원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 중징계 방침을 통보한 가운데 8일 서울 태평로 신한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한 직원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신한금융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라 회장 징계로 신한금융지주 리더십에 큰 공백이 생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김동호기자


최고 경영진간의 소송과 금융당국의 중징계가 중첩되면서 신한금융지주가 심각한 ‘경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미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은 대출비리 혐의로 업무가 정지돼 있으며,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신한사태를 촉발시킨 장본인이자, 교포자금 처리와 관련한 의혹으로 입지가 잔뜩 좁혀져 있다. 여기에 신한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해온 라응찬 회장마저 금감원으로부터 곧 중징계를 받아 금융인으로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기 일보직전이다. 신한의 최고 수뇌부 모두가 옴짝달싹하기 힘겨운 상황에 내몰리자 벌써부터 차기 경영진 후보자들의 이름이 거명되기 시작했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부 및 정치권에서 신한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현재의 위태로운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한다는 명분 아래 관치(官治) 및 ‘정(政)의 치(治)’가 횡행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경영진 공백 메울 묘안 찾아라= 지난 7일 금융실명제 위반 혐의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방침을 통보받은 라응찬 회장은 현재 미국 모처에 체류 중인 상태다. 그가 경영 리더십의 공백을 막으려면 오는 27일까지 일정으로 잡힌 해외 출장에서 조기 귀국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조기 귀국시 국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될 수 있다는 게 부담거리다. 이번 사태의 주무기관인 금융감독원ㆍ금융위원회 국감은 오는 11ㆍ12ㆍ22일로 예정돼 있는데 국회는 국감 증인 채택후 출석요구일 7일전에만 통보하면 된다. 따라서 라 회장이 최소한 금융위ㆍ금감원 국감 출석을 피하려면 17일 이후에나 귀국해야 한다. 귀국해서도 중징계에 대한 소명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 전면에 나서기는 어렵다. 이에 앞서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은 횡령ㆍ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돼 이사회로부터 직무정지 결정을 받은 상태. 그는 또한 라 회장의 실명제 위반건과 관련한 금감원 징계 대상자에 포함돼 있다. 신한지주의 또 다른 이사회 멤버인 이백순 신한은행장도 교포자금 처리와 관련한 의혹 및 송사로 입지가 좁아진 상태다. ◇공영 공백 틈타 정ㆍ관계 개입 조짐 비쳐= 신한지주는 8일 오전 서울 태평로 본사에서 부사장급을 중심으로 긴급 임원 회의를 열고 라 회장 중징계 사태에 대응한 비상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대책회의에서 신한지주는 최고경영자 없이 비상대책회의 등의 형태로 거대 금융그룹을 계속 끌고 가기는 어렵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냈다는 후문이다. 관건은 최악의 경우 누구를 후임자로 선택하느냐는 것. 신한은행 노조는 라 회장의 중징계가 확정돼 물러나게 되더라도 후임자는 내부자 출신에서 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가시방석’이 될 수도 있는 후임자 자리를 전ㆍ현직 신한금융그룹 경영인들이 고사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외부인사 영입설이 등장하고 있다. 금융권과 정치권 일각에서 라 회장 후임으로 전직 최고위급 각료 출신 인사를 비롯한 여권 실세 인사들의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여론과 야권, 신한은행 노조 등의 거센 반발이 예고되기 때문에 이 같은 낙하산 인사가 실현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KB금융지주가 이미 비슷한 전철을 밟았던 점을 감안하면 신한지주도 영향권 밖에 있지 않다고 금융권은 보고 있다. ◇라 회장 중징계 확정시 향방은=라응찬 회장은 귀국후 혐의에 대해 적극 소명을 하더라도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징계 수위는 오는 11월 4일로 예정된 차차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총 9명의 심의위원중 5명이 금융당국자인데다 심의안건은 ’과반수 출석-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기 때문에 금감원의 라 회장 관련 검사 내용에 큰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결과가 뒤집히긴 어렵다. 제재심의위가 라 회장에게 ‘직무정지‘이상 수위의 중징계를 내린다면 신한지주는 당장 사령탑 부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신한지주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직무대행을 선정한 뒤 일종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한지주 정관상 직무대행은 이사진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에 신한금융그룹 안팎에서 비교적 폭넓게 인선을 할 수 있다. 직무대행 체제 출범 후 내년 3월 주주총회에 즈음해 이사진을 재편하고 정식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하는 수순을 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수순이라고 신한지주 관계자는 내다봤다. 제재심의위가 다소 수위가 낮은 ‘면책경고‘의 중징계를 내린다면 라 회장 체제가 당분간 유임될 가능성이 있다. 면책경고를 받으면 금융기관 임원으로 재선임되는 데 제약을 받지만 기존의 임기는 보장 받기 때문이다. 라 회장의 임기는 2013년. 다만 중징계를 받아 이미지가 실추된 만큼 후임 구도를 만들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유임하다가 스스로 물러날 수도 있다. 다만 그 시기는 후임자 물색이 빠를 경우 내년 3월 주총이 될 수도 있고 그 이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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