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폭스캐처

억만장자가 왜 금메달리스트 살해했을까
美 듀폰사 후계자 존 듀폰… 1996년 살인사건 영화화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빠져… 괴물이 된 가엾은 인간 그려



미국 최대 화학 재벌 듀폰사의 후계자이자 미국레슬링협회를 후원했던 존 E.듀폰은 1996년 1월 자신의 레슬링팀 '폭스캐처'의 소속 코치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브 슐츠를 총으로 살해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억만장자가 대체 왜. 이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은 미국 전역을 들끓게 하며 각종 의혹을 낳았다. 누군가는 존 듀폰이 법정 등에서 보여준 기이한 언행 등을 근거로 정신이상을 말했고, 다른 이는 상습 복용했던 코카인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정확한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고 2010년 존 듀폰이 감옥에서 사망하며 진실은 영영 미궁 속에 빠지고 말았다.

영화 '폭스캐처(사진)'는 '왜 억만장자는 살인을 저질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야기는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를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같은 금메달리스트이자 형인 데이브(마크 러팔로)의 그늘에 가려 정당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걸려온 존 듀폰(스티브 카렐)의 전화는 난생 처음 '형이 아닌 내'가 더욱 가치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준다. 마크는 듀폰의 후원에 힘입어 세계선수권 메달까지 따낸다.

그대로만 이어졌다면 더없이 좋았을 두 사람의 관계는 마크보다 더한 인정욕구에 시달리던 존 듀폰에 의해 어그러진다. 듀폰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키워낸 코치라는 이름을 간절히 원했다. 남들에겐 우스꽝스러운 부자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는 더없이 진지했다. 하지만 기회는 허망하게 사라졌고, 약 8년 후 그는 마크의 형 데이브를 총으로 쏜다.

자신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아마도 마크가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방영하기 위해 준비한-를 반복적으로 보고 있는 존 듀폰의 공허한 표정과 데이브 슐츠를 총으로 살해하는 순간 보인 존 듀폰의 무표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영화가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 보여준 정보들을 통해 존 듀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조류학자·우표 수집가·자선가라는 고매한 페르소나(persona)로 자신을 포장해야만 비로소 만족할 수 있었던 사람, 친구라고 생각했던 단 한 명의 사람이 가족에 거금을 받고 자신과 사귀어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어머니라는 단 한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반생을 바쳤지만 결국 그 열망을 이루지 못했던 사람... 그곳에 있던 건 미치광이 사이코패스가 아닌 반복되는 상처와 슬픔에 괴물이 되어 버린 가엾은 한 인간이었다.

인간의 욕망과 심연을 진중한 필치로 다룬 영화는 지난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각종 영화매체에서 뽑은 올해의 영화로 선정됐다. 배우들 역시 '인생 연기'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흡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며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다. 특히 미국 드라마 '오피스'로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코미디 배우 스티브 카렐의 연기 변신은 놀랍다 못해 섬뜩할 정도다. 2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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