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5일 기준 금리를 0.25% 내렸지만 유럽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자 급기야 마이너스 예치금리를 검토 중이다. 시중의 돈이 투자ㆍ소비로 흘러가지 않고 은행권에서만 맴돌자 급기야 은행 예금에 대해 오히려 이자를 받겠다는 것이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ECB는 기준금리와 예치금리를 각각 0.25%포인트씩 인하해 0.75%와 0%로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인하했지만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되지 않자 추가 부양책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클라스 노트 ECB 정책위원은 이날 독일판 FT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기가 계속 안 좋아진다면 ECB가 기준금리를 0.75%이하로 낮추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예치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는 것도 한 가지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트 위원이 ECB 내에서도 물가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매파'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발언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지난 9일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는 ECB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경기 부양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11일 ECB에 예치된 하루짜리 초단기예금은 3,249억유로로 금리를 인하하기 전의 8,085억유로에서 4,840억유로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렇게 빠져나간 초단기예금은 ECB의 당좌계좌로 그대로 흡수됐다. ECB의 금리 인하 이후 당좌계좌에 맡긴 자금은 739억유로에서 5,398억유로로 크게 늘어났다. 평소 은행들이 당좌계좌에 맡겨두는 자금 규모는 1,000억유로 정도이다.
이처럼 은행들의 자금이 당좌계좌에 몰리는 이유는 초단기예금의 금리가 0%로 당좌계좌에 돈을 맡기는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당좌계좌는 이자를 지급하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자금을 쉽게 빼내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RBC 캐피탈 마켓의 옌스 라르센 유럽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금리 인하 전후에 은행들이 자금을 다른 계좌로 옮겼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