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뿐인 황무지에 공장을 건설하며 20년동안 청춘을 바쳤는데 하루아침에 외국사에 매각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520명 조합원의 일터를 보장만 할 수 있다면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지난 79년 LG금속 온산공장 가동때 입사, 20년째인 신택기(40)노조위원장이 LG금속이 외국회사에 매각된데 대해 아쉬움과 함께 내뱉은 말이다.회사측이 지난 19일 온산 동제련공장과 장항 전해공장을 일본 닛폰마이닝사 등 해외컨소시엄사에 10억달러에 매각한다고 발표한 이후 회사의 진로와 고용승계 문제로 시끄러우리란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오히려 지난해부터 회사의 해외매각설이 꼬리를 물었지만 1년이나 더뎌져 퇴출위기감에 시달렸던 불안감이 해소됐다. 4조3교대의 현장 근로자들도 작업에 열심이다.
하지만 사무관리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본관 건물 2층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무거운 침묵과 불안감이 역력하다. 애써 묵묵히 맡은 일을 해 보지만 정리해고의 방패막이가 돼 줄 구원군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배어 나온다. 지난해 동제련공장을 증설, 전체 600여명인 온산공장의 인력 거품현상을 제거했지만 전체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룹계열사중 1인당 생산액이 가장 많고 더구나 국내유일의 동제련업체가 해외에 매각되면 해외메이저사들의 가격농간은 누가 막습니까』
한 간부는 설비증설비용 지출로 재무구조가 나빠졌지만 숙련된 기술과 안정적인 물량공급선이 있는 알짜기업을 외국사에 넘긴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했다. 더욱이 IMF한파속에서도 설비증설을 완료, 가동률 100%에 연산 20만톤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춰 아쉬움이 더하다.
외자유치 구호가 전 산업계에 휘몰아치던 지난해 3월 ㈜효성에서 합작사이던 독일 바스프사를 새 주인으로 맞아들인 한국바스프스트레닉스 300여명의 직원들은 평온을 되찾았다. 1년전 모기업인 ㈜효성이 IMF한파에다 원료 구입난까지 겹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 새주인을 맞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도 공장은 70~80%의 가동률에 머물며 완전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주력상품인 폴리스티렌 등이 세계적인 가격폭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경영진이 내실경영을 외치며 증산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스프사와 1.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서석유화학 200여 근로자들은 아직도 매각에 대한 찬반여론이 비등하다. 한관계자는 『주력품인 AN(아크릴로니트릴)이 시장성이 있는데다 부채비율이 아주 낮아 한일그룹 계열사중 동서석유화학은 알토란으로 통했다. 아사히케미칼이 아니었더라도 국내기업이 분명 탐을 냈다. 게다가 인력규모도 군살을 이미 제거한 터라 감원의 필요성도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IMF체제이후 울산지역에 진출한 외국업체가 부쩍 늘어 50%이상의 지분 참여업체가 31개사, 100%지분을 지닌 업체도 12개사에 달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대부분은 알짜기업이기 때문에 국내자본의 역외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대해 울산지역 외국인투자기업 공장장협의회 홍용기 듀퐁회장은 『외국업체의 진출은 고용안정은 물론 신규 고용창출과 지방세수 확대 등의 잇점이 더 많다』며 『무역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적 조류에 맞게 외국기업을 열린 시각으로 바라봐 줄 것』을 당부했다. 【울산=김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