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제기된 현장 애로 규제들은 곧바로 풀릴까.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건의한 내용이지만 기업인의 숙원 해결 과정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국회에서 관련법을 처리해야 하는 사안도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각 부처는 물론 박 대통령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정부는 민간이 제기한 주요 규제과제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해답을 찾겠다는 입장이지만 박 대통령이 원하는 '속도감 있는' 결과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선 국회의 벽이다. 여수산업단지의 공장 증설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상반기 중 규제를 해소해 투자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으나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의 동의 여부가 변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해당 지역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거세질 경우 국회 차원에서 이 문제가 해소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무역투자진흥회의 때부터 수차례 거론된 여수 산단 내 기업의 공장증설 문제와 관련해 현재 재논의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중복부담금이다. 정부는 지난해 여수 산단 내에 땅이 부족한 만큼 기업들이 녹지를 공장 용지로 전환하고 외부에 대체 녹지를 짓도록 길을 터줬지만 이후 중복 부담금 문제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대체 녹지를 조성하는 비용은 물론 녹지의 공장용지 전환에 따른 지가 차액 환수금까지 모두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
정부는 이에 따라 대체녹지를 조성하는 비용을 지가차액 환수금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법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국토부가 산업입지개발법 시행령에서 녹지를 대체시설에 포함하고 산업부는 산업집적활성화 법령을 개정해 대체시설의 경우 지가차액 환수금에서 공제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구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토부와 산업부 사이의 이견은 없으며 상반기까지는 법 개정을 마무리 짓는 것으로 목표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각 프로젝트별로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가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출지도 미지수다. 20일 끝장토론에서 제기된 서울 양평동 호텔 건립 건이 이런 경우다. 해당 프로젝트는 관광진흥법·학교보건법 등에 규정된 절차를 모두 준수했으나 구청이 뚜렷한 이유 없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우리도 정말 미치겠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 조례 등을 살펴보고 구청과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으나 법령상 문체부가 승인권을 쥔 프로젝트가 아니어서 사업 개시가 지연될 수 있다.
중앙부처 사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규제도 있다. 20일 끝장토론 과정에서 장관들끼리 설전이 오고간 게임 셧다운제(16세 이하 청소년이 자정 이후 온라인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이 같은 사례다. 강신철 네오플 대표가 "게임을 마약처럼 취급하는 규제로 국내 게임회사가 유례없는 위기"라고 지적하자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조윤선 장관은 "제도 도입 이후 심야시간 온라인 게임 이용 청소년이 감소하는 등 효과가 있지만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규제 존치에 무게를 둔 발언이었으나 유진룡 문광부 장관은 즉각 "폐지하는 것이냐"고 되물어 분명한 온도 차이를 드러냈다.
금융산업의 진입장벽 등과 관련한 규제는 정부 입장이 우선 정해진 뒤에야 본격적인 규제 완화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 규제는 눈에 보이는 규정 외에도 감독당국의 관치성 행정지도가 더 큰 문제라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