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현금을 금고에 쌓아두고 좀처럼 꺼내지 않는 모양이다. 삼성과 현대차ㆍGS를 포함한 국내 10대 그룹의 현금과 1년 미만 단기금융상품 등을 포함한 현금성 자산보유액은 지난해 123조7,000억원에 달해 1년 전보다 11조원이나 늘었다. 투자를 위해 실탄을 아껴놓은 것이라면 반길 일이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업의 현금 챙기기는 스스로 원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강요된 결과물이다. 일단 마땅히 자금을 운용할 만한 곳이 없다. 부동산은 얼어붙었고 금융상품에 돈을 맡기기에는 국내외 환경이 너무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사업을 펼치기도 어렵다. 경기침체의 그늘이 아직도 짙은데다 골목상권 보호, 시장질서 확립이라는 새 정부의 정책기조도 투자의 골목을 차단하고 있다. 금고를 열고 싶어도 주변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셈이다.
그 부작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미 통화유통 속도는 2009년 1ㆍ4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가계저축률 역시 3.4%까지 내려갔다. 지난해 말 3.0%로 예상했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3%로 하향 조정됐다. 경기와 정책 불확실성에서 촉발된 기업발 돈맥경화가 가계와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는 올해 최소 12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짜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채발행을, 야당은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국민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인위적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면 방법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 투자확대는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업을 윽박지르는 환경에서 투자에 나설 곳은 많지 않다. 최소한 정부가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야 기업도 금고를 열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국민 부담도 줄이고 경기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