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 이규혁(36·서울시청)의 투혼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더 감동적인 것은 후배들을 다독이는 마음 씀씀이다.
이규혁은 11일(이하 한국시간) 소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빙속) 남자 500m를 마치고 "선수는 1위를 할 수도 있지만 4위를 할 수도 있다. 모태범의 4위도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성적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실망이 컸을 후배를 공개적으로 격려한 것이다.
사실 이규혁에게 모태범은 씁쓸한 이름이다. 이규혁 중심이던 국내 남자 빙속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을 기점으로 해 모태범으로 세대교체됐다.
하지만 이규혁은 "모태범은 이미 정상급 선수"라며 "오늘은 진정한 모태범이 아니었을 뿐 다른 날이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라고 까마득한 후배를 적극 대변했다.
이규혁은 남자 5,000m에서 메달권으로 전망됐다가 지난 8일 12위에 그친 이승훈을 거론하면서도 '응원단장'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이승훈과 모태범 모두 경기를 마치고 표정이 어둡던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하루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들 4년을 열심히 준비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올림픽은 '인정받는 무대'가 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세계 무대에서 강자로 인정받으면서도 올림픽 메달만 없는 이규혁은 이날 500m에서도 메달권에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1·2차 레이스 합계 70초65로 18위. 하지만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에도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고 마지막 한 발까지 어금니를 앙다무는 모습은 후배들은 물론 TV를 보는 국민의 마음에도 깊이 남을 만했다.
이규혁은 "현재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1,000m에서 자신감도 있다"고 말했다. 12일 열리는 1,000m가 이규혁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다. 그는 "저는 초반에 스피드를 내고 이후에 버티는 스타일"이라며 "체력 소모가 많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 제 스타일로 마지막 경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이제껏 집착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았는데 주변에서 다들 즐기고 오라고 해서 오늘은 그렇게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