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자동차 차체 생산업체인 성우하이텍은 체코 동북부 오스트라바(Ostrava)시에 자리한 5만1,000평 부지를 1크라운(42원60전)에 매입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에는 현지 투자를 결정한 지 불과 두달 만에 모든 허가를 따내기도 했다. 공장건설 허가에만 적어도 10개월 가량 걸리는 체코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투자유치를 위한 오스트라바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슬로바키아로 향했던 성우하이텍의 발걸음을 체코로 돌리게 한 것이다. 성우하이텍이 동부 유럽(동구)에 진출한 계기는 기아자동차가 슬로바키아 질리나(Zilina)에 연간 30만대 규모의 승용차 공장을 짓게 됨에 따라 차체부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오스트라바시는 부지매입 이전에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매입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부지를 임대해주는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현지 지원에 힘입어 성우하이텍은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공장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성우하이텍 체코공장에는 프레스ㆍ로보트 등 관련 장비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으며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동유럽으로, 동유럽으로’=유럽연합(EU)의 신(新)성장 엔진으로 떠오른 동유럽에 한국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EU에 속해 있는 헝가리ㆍ폴란드ㆍ체코ㆍ슬로바키아 등은 서유럽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서구와 접해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 외에도 무관세, 저렴한 인건비, 숙련된 노동력, 투자인센티브 등은 유럽 내 산업클러스터의 동진(東進)을 재촉하고 있다. 국내 대표 기업들도 전자ㆍ자동차 업종을 중심으로 동구에 속속 집결하고 있다. 폴란드 브워츠와벡에 둥지를 튼 SK케미칼의 현지 생산법인 SK유로켐도 지난해 6월 공장을 가동한 지 1년도 채 안돼 폴란드 시장의 60%, 동구 시장의 40%을 각각 차지해 현지 기업의 눈길을 끌고 있다. 연간 12만톤 규모의 PET칩(페트병 원료)을 생산하고 있는 SK유로켐은 성공적인 동구 진출을 발판으로 오는 2007년까지 연산 규모를 40만톤으로 늘리고 전체 유럽시장 점유율을 1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SK유로켐은 현지업체인 안빌(Anwil), SK건설, LG상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한국수출입은행, 현지 은행 등이 프로젝트파이낸싱 형태로 참여한 케이스. 특히 한국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EBRD 투자 및 론(LOAN)을 이끌어내 유럽진출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이미 헝가리에 삼성전자ㆍ삼성SDIㆍ한국타이어 등이 진출해 있으며 슬로바키아에는 기아자동차와 협력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준비 중이다. 폴란드는 LG전자ㆍ대우일렉트로닉스ㆍLG필립스LCD 등을 유치했으며 체코도 우여곡절 끝에 지난 18일 현대자동차와 본계약을 체결했다. ◇중소기업 발길도 잦아진다=대기업의 동구 진출이 잇따르자 중소기업의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4일 고양시 킨텍스(KINTEX)에서 KOTRA 주최로 열린 ‘동구 투자진출 설명회’에는 150명을 웃도는 국내 기업 및 은행 관계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이선인 KOTRA 구주지역본부장은 “가전과 자동차를 중심으로 국내 완성품 업체와 협력업체들이 동구권에 거대한 공업단지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금융기관의 관심과 문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구가 ‘유럽의 공장’으로 떠오른 이유는 서구와 인접해 있어 물류비용이 적게 드는데다 무관세로 제품을 내다팔 수 있다는 장점이 작용해서다. 여기에 저렴하면서도 숙련된 노동력도 매력적이다. 시간당 임금은 체코 4유로, 폴란드 3유로 등으로 독일의 27유로(옛 동독 17유로)의 2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동구 국가들은 예부터 공업국가로 알려져 노동자의 숙련도가 동남아시아 국가와 비교할 때 우수하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윤희로 KOTRA 부다페스트무역관장은 “헝가리는 56년에 지하철을 건설했을 정도로 앞선 공업기술을 자랑한다”며 “숙련된 노동력은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중앙ㆍ지방정부의 투자유치 경쟁도 국내외 기업의 군침을 돌게 한다. 공장부지 장기저리 임차, 법인세ㆍ부가세 감면, 투자금액 현금보상 등 각종 인센티브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폴란드와 체코는 대규모 투자 때 각각 투자금액의 25%와 50%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는 신규로 창출된 고용에 대해 연간 노동비용의 30%까지 지원한다. 오세광 KOTRA 바르샤바무역관장은 “법인소득세 등의 감면은 기본이며 투자금액과 지역에 따라 중앙ㆍ지방정부의 인센티브는 달라진다”며 “각종 인센티브 중 투자기업의 성격에 맞는 옵션을 골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조사 철저히 하라=동구 진출에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불안정과 서구 기업과의 경쟁이 도사리고 있어 동구 진출을 저울질하는 국내 기업은 사전조사와 초기 거래선 확보는 필수적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규남 KOTRA 프라하무역관장은 “동구 국가들은 집권당의 성향에 따라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이 바뀔 수 있으므로 투자계약 때 세부적인 사항까지 꼼꼼히 따져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기아자동차의 슬로바키아 진출 당시 루스꼬 경제부 장관은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투자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지만 최근 슬로바키아 정부는 지난해 10월 바뀐 투자인센티브 제도를 내밀며 협력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을 거부하기도 했다. 현지 투자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는 딜로이트의 한 관계자는 “진출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비용이나 규제가 도사리고 있으므로 현지에 미리 진출한 기업이나 무역관에 문의하고 투자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