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러운 거리엔 잿빛 인파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는 듯 하고, 공장 건물처럼 생긴 극장 테라스에는 브라스 밴드가 관객을 모으기 위해 연주를 한다. 극장에 걸린 ‘쇼쇼쇼 쇼처럼 즐거운 인생’ 이라는 현수막 문구와 인물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대조를 이룬다. 50년대의 아픔과 추억을 담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정규교육이라곤 초등학교 6학년 과정이 전부인 작가 오우암(69)이 20여년동안 몰두해 온 유화 40여점을 전시하는 개인전 ‘길’이 그것. 그는 과거만 그리는 작가다. 그의 작업은 50~60년대 시대상을 그대로 기록한 역사이자 우리 부모들의 어린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빛 바랜 사진이다. 그에게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응어리로 남아있는 듯하다. 당시 부역행위로 군인들에게 끌려간 부모는 그 이후 돌아오지 않았고 열두살 소년은 고아가 됐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그의 형편은 지금도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남의 도움으로 거처를 얻고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어렵게 살고 있다. 집안의 벽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그림을 그려대던 가난한 시골 소년의 열정은 큰 딸이 대학을 입학한 후에야 다시 피어날 수 있었다. 미술대학에 들어간 딸이 쓰다 남은 물감으로 처음 유화를 그리기 시작한 그의 화풍은 독특하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 되레 제도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우암표’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철길이다. 철길은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장소이자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문도 모른 채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내일은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담고 있다. 흑염소 두 마리를 끌고 가는 농부의 한적한 뒷모습이 정겨운 ‘나른한 봄’ 저녁을 기다리는 아들을 위해 솥을 긁는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누룽지 긁는 소리’ 등은 따뜻하면서도 소박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전시는 아트포럼 뉴게이트에서 7월 1일까지 계속된다. (02)737-9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