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성사땐 지배구조 안정으로 '뉴삼성' 가속… 주주에도 이익

■ 삼성의 미래 株主 손에 달렸다
제2도약 위한 혁신에 그룹역량 집중 기대
"불발땐 또다른 투기자본 먹잇감 나올수도"

제일모직과의 합병과 관련한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16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 대회의실에 관련 배너가 모여 있다. /송은석기자

17일 열리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임시 주주총회는 단순히 양사 합병 문제를 넘어 삼성의 미래를 좌우할 역사적 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전(全) 계열사들은 합병이 성사되는 대로 각자 제2의 도약을 위한 혁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동안 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경영역량이 불가피하게 분산된 측면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혁신을 통한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물산뿐 아니라 그룹의 모든 임직원이 간절한 마음으로 합병이 성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17일 주총에서 양사 합병이 불발되면 삼성의 혁신은 늦춰지게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엘리엇은 합병 무산 후 삼성물산 경영 전면에 나서 사업부 분사 및 인적 구조조정과 같은 무리한 요구를 쏟아내 단기적으로 시세차익을 챙긴 뒤 한국을 떠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병 성사되면 삼성 제2의 도약=재계에서는 이번 통합 삼성물산 출범을 삼성의 제2도약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모두가 말렸던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거나 세계 시장을 양분한 갤럭시 스마트폰 같은 제품을 내놓는 식으로 한국 경제를 최전선에서 이끌어왔던 삼성이 다시 한 번 변신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합 법인으로 사실상의 지주사 체제가 갖춰지면 지배구조 안정으로 삼성그룹이 차세대 사업 육성 등 본격적으로 혁신에 역량을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병에 따라 삼성의 오랜 숙제였던 지배구조 단순화 작업도 마무리된다. 현재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으로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가 양사 합병 이후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해진다. 법적 관점에서 지주회사 형태를 완성하지는 못해도 '사실상의 지주회사(De facto Holding Company)' 체제는 충분히 꾸려지는 셈이다.

이 같은 삼성의 혁신과 개혁 의지에 동감을 표하는 주주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합병의 성패를 가를 소액주주(지분율 24.43%) 중 상당수가 삼성물산에 직접 연락해와 위임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합병 성사에 필요한 지분을 이미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삼성의 우군은 삼성SDI 등 특수관계 지분 13.82%와 KCC(5.96%), 국민연금(11.21%) 등을 더해 30.99% 수준이며 여기에 대부분 찬성 쪽으로 기운 국내 기관 11.05%를 합하면 우호지분이 42%대에 이른다. 주총 참석률이 80%라고 가정하면 소액주주의 지분 중 절반가량만을 가져와도 안정적으로 합병을 성공시키는 구조다.

◇합병 불발 시 한국 경제까지 '흔들'=문제는 합병이 불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주총 참석률이 증가하면 참석자의 3분의2 이상 찬성표를 얻어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커지게 된다. 예컨대 참석률이 80%면 이 중 3분의2인 53.33%의 찬성 지분만 얻으면 합병이 성사되지만 참석률이 90%로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이보다 6.7%가량 더 많은 표를 확보해 찬성 지분을 6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향배가 정해진 상황이라 그만큼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삼성은 주총 참석률이 90%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고 주총 개최 직전까지 표를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삼성을 비롯한 재계와 경제계·학계에서는 삼성물산 합병이 단순히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경영이 위축되고 전 세계 헤지펀드들이 한국 시장으로 몰려들어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물산 임직원들은 최근 한 달여 동안 엘리엇의 농간에 휘둘려 위임장 확보 작업에 나서느라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건설업의 특성상 수주작업이 중요한데도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외국인·기관투자가들을 만나느라 외국 발주처와의 미팅을 수차례 취소할 정도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회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토대로 삼성전자 경영에까지 간섭해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식으로 사업 근간을 흔들 가능성도 있다.

또한 엘리엇과 같은 글로벌 투기자본이 삼성에 이어 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내 기업을 잇달아 공격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수조원의 돈을 쏟아부어 투자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삼성·엘리엇 간 다툼은 결국 '나쁜 기업사냥꾼'이 국가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한 우리 기업을 공격하면서 촉발됐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삼성 측이 주주친화 정책을 이미 공개했고 합병 법인의 장기적인 성장성도 충분한 만큼 합병 승인을 통해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을 일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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