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그레츠키의 충고


캐나다의 웨인 그레츠키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로 현역 시절 1,400여 게임에서 800골 이상을 기록한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받는 선수다. 신장 183㎝에 70㎏이 조금 넘는 몸무게는 신체접촉이 많고 격렬하기로 유명한 아이스하키 경기선수로는 왜소한 편에 속하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시합 전체를 아우르는 탁월한 센스로 리그를 주름잡았다.

기량으로도 훌륭한 선수였지만 우리에게는 촌철살인의 한마디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있을 곳으로 갑니다 (I skate to where the puck is going to be, not where it has been)"는 말로도 유명하다. 몸집이 작았던 그는 거구의 선수들이 몸싸움에 집중하는 동안 빈 공간으로 달리고 스피드를 이용해 돌파하는 방식의 게임에 능숙했다. 작지만 날렵하게 얼음을 가르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수출산업이 직면한 어려운 현실과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우리 기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국은 미국·일본·중국 등의 '거구' 사이에서 스케이트를 타야 한다. 지금 '퍽'이 놓여진 곳은 언제나 선수들로 북적댄다. 누구나 아는 해법으로는 돌파가 쉽지 않다. 우리 경제가 그동안 성공을 일궈왔던 조선·자동차·전자 등의 주력산업은 이미 수많은 경쟁자들로 붐비고 있다. 최근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 간 산업기술력 격차는 1.1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산업의 기술격차가 줄어들수록 가격이나 디자인 등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어 안정된 시장 확보는 점점 더 요원해진다.

미국을 비롯한 유로존과 일본의 경쟁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원·달러 환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원화 강세) 우리 경제 곳곳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물론이고 미국·일본 등 선진국 경제와 중국·인도 등의 떠오르는 신흥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적극적 경기부양책을 통해 제조업 부활을 꾀하는 일본과 빠른 속도로 기술을 축적하는 중국 사이에서 거친 몸싸움이 심하게 벌어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경쟁국 기업들이 오늘의 이윤을 위해서 몸싸움에 집중하는 동안 우리 기업들이 거친 몸싸움을 하면서도 앞으로 시원하게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텅 빈 새로운 빙판을 찾기 위해 선제적인 고민을 한다면 아이스하키 경기에서처럼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당장의 경쟁에서 이기기에 급급하면 앞으로 퍽이 어디에 놓일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 하루하루의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퍽이 움직일 곳을 생각해보자. 의료·생명공학·사물인터넷·3D프린팅 등 미래 산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찾아서 남보다 먼저 하는 것이 '득점'에 이르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작지만 날렵함과 용감함으로 승부해 온 우리 경제에 '그레츠키의 충고'가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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