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어느 개인회생자의 고백

이재철 기자 <사회부>

“매달 월급에서 83만원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개인회생제 때문에 완전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 지난해 9월 서막이 오른 개인회생제를 신청, 그해 12월 전국 최초로 법원으로부터 개인회생 인가 결정을 받은 A씨(여). 그녀는 개인회생 시행 1년을 맞아 최근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싸늘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개인회생제로 새 삶을 찾았습니다”라는 희망찬 메시지를 기대했던 기자의 생각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법원이 인가 결정을 내릴 당시 “세상에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며 뛸 듯이 기뻐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A씨가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심리적 박탈감’ 때문이었다. 법원은 A씨가 매달 83만원을 3년6개월 동안 내서 밀린 카드 원금ㆍ이자빚 3,500만원을 갚는 것을 조건으로 개인회생 신청을 인가했다. 원금과 이자 채무를 100% 변제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A씨는 “원금의 OO%를 탕감받았다”고 호들갑 떠는 인가자들 무리에 속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어리숙했던 것은 아닌지 한탄했다.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해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자신의 월 소득, 재산 내역을 투명하게 신고한 ‘성실’ 신청자가 개인회생제를 통해 오히려 ‘정직하면 손해본다’는 불안함에 떨고 있는 것이었다. 개인회생제의 이면에는 이렇듯 ‘원금을 얼마나 탕감받느냐’ 여부를 두고 신청자간 ‘상대적 박탈감’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A씨의 고백은 개인회생제가 결국 ‘최소한의 비용’으로 빚더미에서 탈출하고자 몸부림치는 채무자들의 ‘줄다리기’ 게임임을 의미한다. 줄다리기의 상대편은 채무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법원이다. 이 게임에서 채무자가 월 소득을 속여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등 편법을 저지를 때 우리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수식어로 개인회생제의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았던가. 개인회생제 시행 1년.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이 게임은 편법만 없다면 건전한 소비자로 복귀하는 이를 늘려주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매우 이롭다. 편법을 통제할 수 있는 법원의 엄격한 ‘검증 시스템’, 이와 함께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갱생의 혜택을 누리겠다는 채무자들의 결연한 ‘윤리 의식’. 성실한 신청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게임의 두 가지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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