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오바마의 '어중간한 선택'

미, 이라크에 '지상군 투입 없는 군함 배치' 결정
미국내 재개입 반대 여론 확산 속 강경파 행정부 압박
이라크 반군 "정부군 1,700명 처형"… 중동에 짙은 전운

미국 국방부가 14일(현지시간) 항공모함 등 군함 3척에 대해 이라크 인근 페르시아만(걸프해역)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란도 이라크에 2,000명 규모의 파병을 결정하는 등 이라크 내전이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철군 3년 만에 다시 중동 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이라크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3차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이라크를 뒤덮은 전운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다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상군 투입 없는 군함 배치'를 강조해 이라크 철군에 대한 비난 여론과 해결이 요원한 이라크 사태에 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주장 사이의 딜레마에 처해 '어중간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아라비아해 북부에서 대기 중이던 조지HW부시함과 미사일 순양함 필리핀시, 미사일 구축함 트럭스턴 등 3척의 군함에 대해 이라크 인근 걸프만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고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이 밝혔다. 길이 약 333m의 니미츠급 항공모함 조지HW부시함에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 4개 편대를 포함해 통상 56개의 고정익 전투기가 배치돼 있으며 나머지 두 함정에도 토마호크 등 각종 미사일을 각각 100기가량 장착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영국은 이라크에 300만파운드(약 52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 결정을 내렸고 시아파 맹주 격인 이란은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시아파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2,000명의 병력을 파병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이날 보도했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도 15일 이라크 사태가 매우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며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군은 이 같은 외곽 지원에 힘입어 살라헤딘주 일부 지역을 탈환했다. 이라크 주요 지역 30% 이상을 장악한 채 수도 바그다드 진격을 앞둔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의 기세도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다만 미국의 입장은 아직 모호하다. 전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 지상군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가안보 담당자에게 이라크군을 도울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미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2011년 철군 결정 이후 이라크로의 군병력 재투입을 주저하고 있는 오바마가 ISIL에 보낸 경고이자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온건 수니파 간 협상 중재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이라크 사태를 정치·종교적 갈등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직접적 군사 행동은 가급적 배제하고 제한적 개입에 그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CNN 역시 칼럼을 통해 "이라크로의 개입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2003~2011년의 예를 통해 극명히 봐왔다"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또 한번의 '덫'이 될 제3차 이라크 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내 이라크 재개입 반대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공화당 등 미국 내 강경파들은 "지금 이라크를 공습하지 않으면 급진 세력들의 공세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며 오바마 행정부를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이 같은 딜레마를 풀기 위한 오바마의 선택이 바로 '지상군 투입 없는 군함 배치'라는 방식으로 나타난 셈이다. 미국은 알말리키 총리의 요청에 따라 무인기(드론)를 통한 정찰업무 확대 등 여러 형태의 대응수단도 함께 강구 중이다.

그러나 미국에 여전히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갖는 중동 지역이 최근의 이라크 사태로 극심한 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3차 이라크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3년 전) 종전 없는 철군 결정에 대한 대가를 우리는 지금 치르고 있다"며 "오바마는 '제3의 이라크 전쟁'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제1의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