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퇴출기업 85만곳 … 170조 버리는 꼴"

이기철 한국기업회생경영협회장
채권자 독촉이 회생 가로막아
법원의 정확한 판단 도와줄 전문가 연 1,000명 키울 것


"기업에도 유년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가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은 온통 창업, 벤처지원 등 유년, 성장기에만 집중해 있습니다. 성숙, 쇠퇴기에 대한 무관심이 막대한 사회적 매몰비용을 낳고 있어요"

2일 만난 이기철 한국기업회생경영협회장(70·사진)은 기업회생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다. 신중앙저축은행장 출신으로 IMF 위기 때는 정부에서 임명한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국내 최초 기업회생상담 전문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2002년 당시를 회상하며 "은행장 출신인 제가 채무자를 위해 일을 한다고 말하니까 동료 금융인들이 다들 미쳤다 그랬죠" 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기업회생에 관심을 가진 것은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며 가능성 있는 기업들이 채권자의 독촉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매년 퇴출되는 기업이 약 85만개에 이르고 이로 인한 사회적 매몰비용이 170조원에 이른다"라며 "성공과 실패의 경험 모두 사회의 중요한 자산인데 공유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특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재빠르게 파산을 하는 것이 기업인이나 사회를 위한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법정관리 시 개인과 기업회생을 전담하는 전문가 부재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꼽았다. 현재 법무사, 변호사 등이 참여하지만 모두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라 법원이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 기업회생경영사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서로의 전문지식을 보완하고 법원이 회생과 파산 여부를 결정할 때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 게 시급하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이 회장은 "미국에도 기업회생·재기를 지원하는 전문기관인 TMA(Turnaround Management Association)가 있다"며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민간 기업회생재기전문기관으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올해부터 퇴출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실시하고, 매년 1,000명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에 우선 집중하겠다"며 "중장기적으로 중기청과의 협력 아래 한계기업 회생 파산 관련 정책연구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출범한 기업회생경영협회는 퇴출 기업의 회생을 돕고, 퇴출시에는 재기하기 쉽도록 돕기 위한 사단법인이다. 대전·부산 고검장을 지낸 최환 변호사와 중기청 차장을 지낸 나도성 교수가 협회 고문을, 박태권 전 충남도지사가 명예회장을 각각 맡고 있다. 또 과기부 차관을 지낸 유희열 부산대 석좌교수는 부회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진용 기자 yong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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