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할 정도 자신감 타고난 '도전 중독증'"팔방미인이예요."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에 다니는 직원에게 이종욱 소장의 성품에 대해 묻자 곧바로 이 같은 평가가 나왔다. "그러면 함께 일하는 게 재미있겠네요"라고 재차 묻자 "그러나 일할 때는 호랑이처럼 엄하게 돌변해요"라고 말한다.
이 소장은 진짜 팔방미인이다. "못하는 게 없다"고 스스로 얘기할 정도다. 바둑은 아마 3단, 당구는 400, 테니스는 회사의 대표선수다. 사람을 사귀는 재주도 타고났다.
공부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건축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모친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건축ㆍ토목일을 하다 보면 객지 생활이 많아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 의대에 진학하라는 부모의 말에 그는 "6년간 공부하는 게 싫다"고 우겨 결국 약대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무엇이든지 하려고 마음먹으면 해낼 수 있다고..졸업 후 유한양행에 다니면서 약리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실제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을 해냈다.
그러자 그는 점점 무모해지기 시작했다.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80년대 초 그는 "언젠가는 반드시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한 선배에게 말했다가 "미친 녀석"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당시 국내 제약업계는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87년 국내 제약시장이 개방되면서 신약개발의 필요성은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도 신약개발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88년 그는 미국 제약회사인 쉐링 플러그 연구소에서 교환연구원으로 일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매일 새로운 연구를 보고 오후에는 연구소의 매니저와 토론하면서 신약개발에 대한 좋은 기회를 얻었다.
불과 3개월 동안의 연구원 생활이었지만 5년 동안 근무한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경험까지 쌓은 그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91년 내친 김에 그는 신약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엄청난 판단착오였다.
신약개발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도전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몇일의 밤샘 작업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신약개발에 뛰어든 지 이제 10년. 그는 이제 겸손의 소중함을 배웠지만 오만할 정도로 무모했던 그의 도전은 이제 판매를 눈 앞에 둔 신약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이 소장은 요즘도 일에 매달려 산다. 평균 퇴근시간은 10시.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집에서 저녁을 먹을 정도다. 격주로 돌아오는 토요 휴무는 그에게 있어 밀린 일을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지 않고 연구소에 나와 일을 하면 평소보다 몇배나 잘돼요."
그는 새로운 것이면 꼭 갖고야 마는 성미다. 컴퓨터 같은 정보통신 기기는 더욱 그렇다.
중독에 가까울 정도다. 세계 최초의 PC인 애플컴퓨터에서 시작해 새로 나온 PC 중 그의 손을 거쳐가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최근에는 개인휴대단말기(PDA)에 빠져 있다. 얼마 전에는 PDA에 무선인터넷 기능까지 추가했다.
그의 이 같은 일 중독증은 타고난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과학기술계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도 경쟁력이 될 수는 없다'는 신념이 오늘도 그를 연구실에 머물게 한다.
문병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