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이론 중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쉽게 말해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사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시중은행 창구영업현장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적용될 만한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금융 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일부 금융회사 창구직원들이 고객의 주민등록증이나 도장 등을 보관하며 금융거래를 대행해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객 편의를 위한 것이라지만 이 같은 행태는 금융실명제법을 위배한 엄연한 불법행위다.
이런 상황은 금융 당국의 검사 과정에서 웃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최근 A 시중은행 모지점에는 지점장의 지침이 하달됐다.
금융감독원 현장조사가 있을 예정이니 보관하고 있는 고객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 등을 숨기라는 지시였다. 여직원들에게는 탈의실에 숨겨놓은 주민등록증을 자신의 집 등으로 옮기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이 은행 창구직원은 "은행 내부감사 때 거래시간과 폐쇄회로(CCTV) 등을 대조하는 등 감시가 강화돼 웬만하면 대행거래를 하지 않지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고객의 경우 예외"라며 "과거에 비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관행이 남아 있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다.
은행업 감독규정 제91조는 통장 또는 인감 없이 예금을 지급하거나 거래처의 인감·통장 등을 보관하는 행위, 창구를 거치지 않은 예금의 입·출금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지난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도입된 금융실명제가 이 감독규정의 근거다.
불법행위인지 알면서도 이 같은 행위가 인습처럼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은행원들 사이에 모럴해저드가 만연해 있다는 증거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일부 은행원 중에선 가까운 고객이니까 작은 불법은 외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며 "이 같은 무사안일주의가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해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