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산책] 거북선과 이순신정신의 부활

황원갑 <소설가·한국풍류사연구회장>

지난해부터 KBS 1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유심히 보고 있다. 절세의 명장 이순신을 위기극복과 난관돌파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최고경영자로서도 존경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일대기를 쓴 전기작가의 한사람으로서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주 말에 거북선이 진수식 때 침몰하는 내용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거북선의 침몰이라니. 어떻게 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역사날조ㆍ역사왜곡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선조실록’과 ‘난중일기’ 등에 따르면 거북선은 임진왜란 14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이 왜란에 대비, 휘하 장병들과 일심동체로 심혈을 기울여 건조했으며 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이틀 전에 준공해 함포사격 훈련을 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전함인 판옥선 건조보다 더 많은 시간과 인력과 비용이 들었을 거북선이 진수 당일 침몰해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니 참으로 황당무계한 역사날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순신은 전라좌수사 자리에서 열두번도 더 파면당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범한 역사날조와 비틀기는 이것만이 아닌데 정작 더욱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사실을 왜곡한다면 ‘불멸의 이순신’이 아니라 ‘필멸의 이순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시청자들에게 영향력이 막강한 공영방송 KBS가 이처럼 이순신을 깎아내리는 반면 원균을 용장으로 돋보이게 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오직 시청률 제고를 위해서 역사날조와 왜곡을 자행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순신의 전공을 깎아내리고 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는 임진왜란 당시에도 있었다. 국왕 선조가 대표적이었다. 선조는 동서 당쟁을 조장하다시피 해 국정의 혼란을 가중시킨데다가 임진왜란을 막지 못한 못난 지도자였다. 그런 그가 리더십도 없고 장수의 자질도 부족한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등용해 수군을 전멸시킨 자신의 궁극적 책임을 모면하고자 이순신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백성에게 신망 높은 김덕령을 죽이고 곽재우를 귀양 보내고 이순신을 죽이고자 했던 선조는 참으로 엽기적인 국왕이었다. 따라서 이순신 죽이기와 원균 옹호론은 선조가 그 원조였던 셈이다. 그런데 선조와 윤두수ㆍ근수 형제, 김응남과 신립과 원균 등 서인들의 이순신 죽이기의 목적은 당파에 따른 책임회피와 전공탈취에 있었지만 오늘의 원균 명장론자들이 이순신 죽이기에 나선 것은 오로지 상업적 이익을 얻겠다는 목적뿐이다. 하지만 없는 사실까지 날조해 역사를 비틀고 뒤집어서 이름값을 올리고 책을 많이 팔아먹고 시청률을 올리는 것은 천번 만번 옳지 못한 무책임한 짓이다. 사극은 일반 드라마와 달리 그 소재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에 기초함이 기본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을 소심하고 나약한 인물로 그리고 거북선이 진수되던 날 침몰했다는 따위의 역사왜곡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사는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 또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한두사람이 제멋대로 비틀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고, 또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원균을 용장으로 분칠해주기 위해 이순신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작태는 역사의 죄악이다. 돌이켜보건대 이순신의 적은 왜군만이 아니었다. 그는 백성들의 인기를 시샘해 죽이려 드는 영악한 국왕과도 맞서야 했고 멍청한 서인 대신과 아군 장수들과도 싸워야 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전쟁의 승리를 통해 나라와 겨레를 구하기 위해서 였다. 이순신의 위대함은 비상한 시기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영원히 빛나는 불멸의 승리를 쟁취했다는 점에 있다. 그런 까닭에 또다시 맞은 이 난국에 이순신 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이순신의 잠을 깨우지 말라. 이순신을 모독해 그를 두번 죽이지 말라. 지금은 국난에 버금가는 난국이다. 이와 같은 비상한 시기에 하나로 굳게 뭉쳐 불퇴전의 이순신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지금은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이긴다’는 이순신 정신의 부활이 절실한 난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