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도 연장근로 해당' 판결 땐 혼란 불가피

■ 근로시간 단축 4월입법 사실상 무산
근로시간 주 52시간으로 줄고 수당은 150%서 200%로 늘어 중소제조업체 후폭풍 클 듯
여야 "한번 더 논의 해보자" 노사정소위 협상 불씨는 남겨


노사정 합의가 결렬돼 4월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당분간 현장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곧 대법원에서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선고가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수원지방법원 등 하급심에서는 줄곧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으며 대법원의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법원이 예상대로 1·2심 재판결과를 인용해 판결을 내리면 최대 68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주말·휴일근로 16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은 즉각 주당 5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휴일 근로시간은 연장 근로시간에서 제외된다'는 2000년 9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이 무효가 된다. 또 연장근로는 주당 최대 12시간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처럼 평일에 연장근로 한도를 채우고 휴일에도 일을 시키면 불법이 된다. 소위는 논의를 시작하면서 대법원에 판결 유예를 요청했지만 합의안 마련에 실패함에 따라 하급심을 인용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게 되면 현장에서는 '연착륙' 과정 없이 바로 주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임금채권은 소멸시효가 3년이기 때문에 추가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잇따를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노동시간 축소에 따른 혼란=근로시간 단축의 여파는 재계와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들은 근로시간 상한이 52시간으로 낮아질 경우 당장 추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노동시간이 줄면서 생산량을 맞추지 못해 존폐의 기로에 놓일 수도 있다.

아울러 임금의 상당 부뷴이 특근·연장근로 수당으로 채워졌던 생산직 근로자들은 30%가량의 소득 감소가 예상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시간 상한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는 전체의 53%인 633만명이다. 이 중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는 근로자는 62만3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휴일에 8시간 이내 근로를 하면 기본급 100%에 더해 50%의 가산임금만 지급해왔다. 그러나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게 되면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휴일가산임금 50%에 연장가산임금 50% 등 100%의 가산임금을 추가 지급해야만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곧 대법원 판결이 나와 당장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줄어들면 현장이 어려워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노사정 소위에서는 연착륙 입법을 검토한 것이며 가만히 있다고 현 상태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야 협상 불씨는 남겨=다만 17일 노사정소위에서는 21일까지 물밑 접촉을 계속하기로 해 협상의 불씨는 살려뒀다. 노동계나 경영계 모두 법개정에 실패한 상태에서 대법원의 판결이 가져올 혼란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야는 21일에 안건을 정하지 않은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일정을 잡기로 했으며 노동계와 경영계의 합의가 이뤄질 경우 즉각 법 처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노사가 진짜 마지막이라는 의지를 비치고 있어 현재로서는 매우 가능성이 작아 보이지만 21일까지 한 번 더 해보자는 논의가 있었다"면서 "다만 오늘 같은 자리라면 더 하는 게 의미 없다는 게 의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4월 국회를 넘기면 근로기준법 개정 작업은 올해 말로 늦어질 가능성도 크다. 제19대 국회가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오는 5월 그동안 협상을 중재하던 환노위 소속 위원들이 대거 자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원구성이 완료된 후 새로운 환노위 소속 위원들이 오면 안건 파악 등에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이를 고려한다면 근로시간단축 등 노동 관련 쟁점에 대한 논의는 9월 정기국회에서나 재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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