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12월 결산기업의 2003년 상반기 실적은 증권사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9% 줄어든 반면, 영업이익은 22.6%ㆍ경상이익은 32.8%ㆍ순이익은 35.5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부진한 상반기 실적은 이미 주가에 다 반영된 것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상반기 실적악화의 원인이 하반기 실적전망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향후 증시전망을 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상반기 실적이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악화된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달러화 약세다. 지난해 상반기 평균 원ㆍ달러환율은 1,295원이었지만, 올 상반기의 평균 환율은 1,205원으로 6.9% 평가절상 됐다. 다시 말해 같은 규모의 상품을 수출하더라도 원화 환산 매출액은 6.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는 만큼, 제조업체들은 매출액 증가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유가강세다. 지난해 상반기 국제유가는(WTI기준) 1배럴에 23.9달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올 상반기 국제유가는 이라크 전쟁의 영향으로 무려 31.8% 상승한 31.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비용구조를 크게 악화시켰음은 물론,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하락으로 매출액이 떨어지는 이중고를 가져왔다.
실적 부진의 또 다른 원인은 수출단가 하락이다. 한국은행에서 집계하는 수출단가지수는 영업이익의 가장 중요한 선행지표로 간주되고 있다. 올해 2월 84.8을 기록했던 수출단가지수는 지난 5월 83.7까지 하락해 2ㆍ4분기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작용했다. 이 밖에도
▲카드채 위기
▲임금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
▲유통업체 회계기준 변경 등의 요인들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요인에 비교한다면 그 중요도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과 같은 실적악화의 주범들이 하반기에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수출단가의 상승세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수출단가지수에 강력한 선행성을 보여주는 미국의 핵심 원자재 물가(Core Crude Materials PPI)가 6월과 7월 각각 전월에 비해 0.4%와 0.8% 상승함으로써 수출단가 개선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국제유가도 4월 이후 배럴 당 28~32달러의 박스권을 유지하고 있어, 수익악화의 위험이 크게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원ㆍ달러환율은 2ㆍ4분기 평균 1,210원에서 3ㆍ4분기에는 1,181원으로 2.4% 평가절상 돼 여전히 기업실적 악화의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수출단가 상승에 힘입어 매출액 감소의 악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데다, 수입물가 하락에 따른 비용측면의 이익을 감안하면 상반기와 같은 악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수경기도 지난 6월을 고비로 서서히 회복되는 기미가 나타나고 있어 하반기 실적개선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통해 볼 때, 3ㆍ4분기 실적은 상반기에 비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난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실세금리의 급박한 상승세와 이로 인한 악영향은 불안요인으로 남아있다. 지난 2000년 봄 기술주 버블붕괴로 인한 충격을 세계경제가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적기에 단행된 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 때문이었다. 저금리에 기인한 내구재 소비활성화와 부동산시장 호황이 없었다면, 세계경제는 과잉투자 해소에 걸리는 고통을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중순이후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3.13%에서 4.48%(8월 21일 기준)까지 급등하는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장기채 금리의 상승이 목격되고 있다. 아직까지 금리상승의 절대규모가 1%대에 머무르고 있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4ㆍ4분기까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부동산 및 내구재 시장의 타격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하반기 기업수익 전망은 대단히 밝지만, 금리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3ㆍ4분기에 비해 4ㆍ4분기 이익회복의 탄력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은 3ㆍ4분기의 긍정적인 실적 발표와 채권시장 약세에 따른 시중 자금의 이동에 힘입어 강세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나, 시중 금리의 상승세가 어느 수준까지 이어질 지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홍춘욱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