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을 것이다. 얼마 전 55명의 젊은 생명을 앗아간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 사건 이후 청소년들이 갈 만한 술집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다 보니 20세기의 마지막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그들이 갈 곳, 놀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콜라텍에서의 테크노댄스나 오락실에서의 댄싱게임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몇몇 어른들의 묵인 아래 카페나 호프집 등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약간의 술을 마시면서 그들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여흥을 즐기곤 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10대들의 인터넷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이 사건과 관련한 어른들에 대한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다. 인천 호프집 화재와 관련된 모든 어른들을 엄중히 처벌할 것을 주장하며 세상을 등진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분노하는 대상은 술집에서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도록 묵인해 준 공무원일까, 안전한 놀이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이 사회의 어른들일까. 그들은 과연 술·담배 등 유해한 것들로부터 철저히 보호될 것을 진정으로 주장하는 것일까.
레드존(RED ZONE)을 확대하고 호프집 등에 청소년이 출입하는 것을 엄격히 단속하는 것만으로 청소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청소년들은 본질적으로 금지사항에 대해 많은 호기심과 모험심을 갖기 때문에 그들에게 허락된 장소나 개방돼 있는 놀이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시시해지고 만다. 너무 교육적이고 너무 건전하기만 한 놀이문화는 청소년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어른들과는 가치관이 다르고 또 어른들이 청소년이었던 「그때 그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 시대 청소년들의 관심과 욕구를 먼저 이해하고 젊음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열린 공간과 놀거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놀이는 어디까지나 놀이여야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여가는 역시 여가일 뿐이어야 한다. 조금은 위험하고 황당해 보이더라도 과감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어른들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청소년용」은 결국 어른들에게만 설득력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