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주식투자자들 사이에는 '5월에 팔고 세인트 레거 데이(St. Leger Day)에 사라'는 말이 있다. 세인트 레거 데이는 매년 9월 초 열리는 영국 3대 클래식 경마대회 중 하나다. 영국인들은 보통 이날을 기점으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체감하고는 한다.
'여름에 주식을 팔고 가을에 다시 사라'는 조언은 선뜻 믿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지만 수치상으로 상당 부분 증명된 전략이다. 미국 다우존스 지수의 지난 1950년 이후 월별 수익률을 비교·분석한 결과 5월부터 10월까지의 지수 평균 수익률은 0.3%에 불과한 반면 11월부터 4월까지 평균 수익률은 7.5%에 달했다.
신기하게도 올해 역시 5월 매도 전략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주식시장은 4월28일 최고점에 도달했으며 그 뒤를 이어 글로벌 증시 및 중국 증시도 각각 5월21일과 6월12일에 고점을 경신했다. 그러나 6월 중순부터 증시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며 약 2개월 반 만에 글로벌 증시는 6% 정도 하락했다. 특히 중국 주식시장은 30% 이상 급락하며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올가을 세인트 레거 데이의 투자 격언은 적중할 수 있을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상 시점을 언제로 결정하는지에 따라 글로벌 증시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지만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지금은 주식을 매수하기 적절한 시점이다. 최근 수 개월간 글로벌 주식시장이 급격한 조정을 받으면서 시장의 거품이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피터 린치와 같은 세계적 투자자는 시장폭락 이후에 저평가된 우량주를 매수해 큰 이익을 거둔 바 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경기가 지속적인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미국은 올 하반기 또는 내년 상반기 중 첫 번째 금리인상에 나서겠지만 이후 추가적인 통화 정상화는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매우 더디게 진행할 것이다. 한편 미국을 제외한 유럽·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적어도 내년 여름까지는 양적완화 기조를 이어가는 등 경기부양에 더 많은 자금과 노력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기둔화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아시아 시장이 1990년대 후반과 같은 위기상황을 다시 겪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재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부채구조·인플레이션 등 펀더멘털은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액도 충분해 외국 자본의 갑작스러운 유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