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바둑 영웅전] 무너진 철옹성

제7보(86~100)



검토실에 있던 필자가 예상했던 진행은 백이 86으로 89의 자리에 꼬부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노타임으로 백86에 끊어버렸다. "이세돌이 믿고 있는 것은 결정적인 팻감이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승부를 확실하게 결정할 작정으로 보입니다."(목진석) 백90으로 끊은 것은 정교한 수순이다. 계속해서 백92로 젖힌 수가 흑의 응수를 거의 두절시키고 있다. 96의 자리에 막자니 패가 뻔한데 팻감 사정이 흑에게 불리한 마당이다. 그렇다고 참고도1의 흑1로 물러서자니 백2 이하 6으로 조여붙일 때 숨이 가쁘다. 흑7 이하 11로 어마어마한 패가 나는데 백에게는 12로 두어 연결해 가자는 얄미운 팻감이 있다. 고민 끝에 흑93으로 두었지만 백94, 96이 좋은 수순이어서 결국 우하귀가 모조리 함락되고 말았다. 원래는 철옹성이던 우하귀가 우습게 함락된 것이다. 흑97로 보강한 것은 울며겨자먹기. 이 수로 참고도2의 흑1에 몰고 싶지만 백2면 수상전이 되지 않는다. "이젠 좌하귀의 백대마만 잡히지 않으면 백승입니다."(목진석) 강동윤은 일단 그쪽을 흑99로 정조준했는데 이세돌은 단수도 받지 않고 좌하귀의 궁도를 넓히고 본다. 검토실에 있던 프로기사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목숨만 살리면 이긴다 이거지." "던지라 이거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