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마저… 종목형 ELS에 물렸다] 투자도 감독도 '깜깜이'… 기금 묶어 관리하는 '풀 방안' 검토를

사립대, 투명성·전문성 부족
정부, 투자내역·현황 모르고 부실공시 제재 수단도 없어
체계적 모니터링 강화해 고위험 투자 손실 막아야

연세대 총학생회, 연세대부자학교펀드감시단, 참여연대가 지난해 12월 연세대 앞에서 대학 등록금·적립금 정보를 투명하고 세세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서울경제 신문 취재 결과 교비회계 적립금을 통한 사립학교의 금융상품 투자는 손실을 많이 입어 재정을 개선하기보다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교비회계 적립금의 대규모 투자손실 사태는 안이한 정책 대응으로 일관한 정부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뛰어든 개별 사립대학이 자초한 참사다.

교비회계 적립금은 학생에게서 징수하는 등록금, 입학금, 교내시설 사용료와 기부금 등으로 구성된다. 사립대학이 교비회계 적립금으로 금융상품 투자에 나선 것은 지난 2007년 12월부터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는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존하던 사립대학 재정개선을 위해 교비회계 적립금의 50%까지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사립대학에서 규제완화 명분으로 '투자수익금을 통한 교육의 질 향상'을 내건 것도 규정 개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작 규정 개정은 사립대학 재정개선은 고사하고 오히려 재정부실을 이끈 주범이 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4일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회계연도 기준으로 사립대학 33곳 중 절반이 넘는 18곳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학교들의 손실액 합은 총 127억5,000만원에 달했다. 특히 서강대(-29.9%), 아주대(-27.7%), 호서대(-16.4%), 광주대(-15.2%), 성결대(-13.29%) 등은 두자릿수 이상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냈다. 반면 1원이라도 수익을 낸 곳은 9곳에 불과했다. 교비회계 적립금에 대한 투자 허용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개별 대학의 세부 투자 내역 및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법령상 교육부가 사립학교의 구체적인 투자 내역·현황에 대해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없는 탓이다. 국회 교문위 소속 여당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정기국회 또는 국정감사 기간마다 교육부에 교비회계 적립금에 관한 세부 내역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만 사립대학의 반발 탓에 집계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사립대학의 세부 투자 내역 및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결산 내역을 봐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결산 내역의 의무공시 기간이 1년에 불과한데다 이를 어겨도 교육부에서 마땅히 제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관계자는 "과거 자료는 사학진흥재단 및 대학알리미(한국대학교육협의회 운영) 홈페이지를 참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결산에 관한 세부 부속명세 자료는 생략된 상태로 게재되는 탓에 투명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심지어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공시된 결산 자료에 금융투자 관련 세부 내역을 잘못 기입하는 등 최소한의 투자관리조차 소홀히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일반예금으로 잘못 표기하거나 주가연계펀드(ELF)와 혼동해 기록하는 등의 오류가 서울경제신문의 취재 과정에서 발견됐다. 한 사립대의 재무팀 관계자는 "결산담당자가 여러 종류의 파생결합상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탓에 표기 오류가 발생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사학진흥재단 재정정보팀 관계자는 "매년 300여개가 넘는 사립학교의 예·결산 내역을 일일이 감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30곳 정도만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비회계 적립금에 대한 투자가 허용된 지 7년이 넘었지만 투자 주체인 사립대학이 여전히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한 점도 문제다. 현재 상당수의 사립대학은 독립성이 확보된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은 채 재무·회계를 담당하는 실무진의 판단에 따라 투자상품을 선정하고 이를 대학본부에서 승인하는 형태로 의사결정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최고전문가를 투자책임자(CIO)에 임명해 체계적으로 기금을 운영하는 해외 유명 대학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최근 큰 투자 손실을 본 한 사립대의 경리팀 관계자는 "지난 2011년·2012년에 파생결합상품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뒤에야 기금운용위원회가 설치돼 투자 상품을 선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립대학들이 개별적으로 운용하는 기금을 금융당국 또는 대학연합체가 한데 묶어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이날 "대학기금을 비롯해 다른 민간기금의 '풀(Pool)'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 연구위원 역시 "사립대학의 적립금은 안정적인 자금운용을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한다"며 "특히 고위험군 상품에 투자했을 경우에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손실을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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