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손병두 당시 전경련 상근 부회장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
대우차 조기매각 압박이 '헐값' 빌미 제공
反기업정서는 기업을 IMF 속죄양 삼은 탓
'빅딜'은 박태준 당시 자민련총재 아이디어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손병두 당시 전경련 상근 부회장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대우차 조기매각 압박이 '헐값' 빌미 제공反기업정서는 기업을 IMF 속죄양 삼은 탓'빅딜'은 박태준 당시 자민련총재 아이디어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관련기사 •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 정덕구 "대선 휘말려 신종 경제위기 올까 걱정" •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 •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서둘렀으면 해체 안돼" “대우가 망한 데는 정부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지난 98년 대우가 자동차의 지분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매각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을 때 정부가 조기 매각하라고 지나치게 압박했다. GM은 버티면 싸게 살 수 있다고 보고 질질 끌다가 결국 협상을 깨버렸다.그리고 훗날 결과적으로 대우차를 싸게 사지 않았느냐.“ 지난 97~2002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으로 외환위기 이후 휘몰아친 구조조정의 태풍 속에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했던 손병두(66ㆍ사진) 서강대 총장. 노사정협상, 빅딜(Big Deal) 등 현안이 터질 때마다 재계측 간사를 맡아 정부와 청와대, 노동계를 상대로 피 말리는 협상을 벌였던 그는 대우 패망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손 총장은 “김우중 회장이 98년 3월 GM와 75억 달러의 외자 유치에 성공하자 “대우는 이제 걱정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GM이 대우차 실사를 2개월씩 2차례나 연기하더니 9월에는 아예 떠나버리는 과정에서 대우가 너무 멍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우 그룹은 12조원만 지원하면 회생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부가 거부했다. 결국 공적자금 23조원이 들어가지 않았느냐. 정부가 현명한 장사를 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손 총장은 또 기업들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사회 전반에 ‘반기업 정서’가 확산된 데 대해서도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 누군가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는데 정치인들이 기업을 속죄양으로 삼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 외환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고비용ㆍ저효율 구조가 문제였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지난 97년 전경련 부회장이 되면서 한시적으로라도 구조조정특별법을 만들어달라고 국회와 정부에 건의했다. 특히 노동법 개정이 핵심이었다. 공장 라인이나 사업부를 통폐합하면 감원이 필요했다. 기업 합병 관련법도 12개나 돼서 하나하나 고치는 것은 시간이 많이 늘기 때문에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단기적인 원인을 들자면. ▦우선 정부의 환율 정책이 문제였다. 정부가 ‘88 서울 올림픽’ 전후 사상 처음으로 무역 흑자를 내자 수출을 소홀히 했다. 국민들도 외국에 나가 달러를 쓰는데 바빴다. 중국 옌벤에서는 한 관광객이 돈 자랑 하느라고 담배를 10달러짜리에 말아 피우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20달러짜리로 담배를 마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한다. 환율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자 무역 적자 늘었고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쌓지 못했다. 정부의 외환정책도 지적해야 한다. 당시 종합금융사들이 정부 승인이 필요 없는 1년 미만짜리 단기 외채 1,000억 달러를 차입해 동남아ㆍ러시아 등 신흥시장과 국내 기업에 각각 500억 달러를 빌려줬다. 동남아 금융 위기 이후 외국 기관들이 일시에 대출을 회수하자 한국은행이 외환 보유고로 금융기관의 외채를 대신 메우다 보니 국가 부도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 외환위기 이후 ‘반기업 정서’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는데. ▦ 지난 98년 1월 전경련 회장단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만났을 때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 “기업인이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라고 말했다. 겸양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외환 위기의 모든 책임을 재벌 구조로 돌렸다. (일부 인사들이 비판하는 기업의) 선단식 경영은 세계시장에서 선진국과 경쟁하는데 불가피했다. ‘수출 한국’도 선단식 경영, 다각화 경영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의 제도나 규제, 시장 발달 수준 등에 맞도록 가장 최적의 방식으로 진화된 게 재벌 시스템이다. - ‘빅딜’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는데. ▦ 재계측 간사로 7개 업종의 빅딜에 관여했다. 빅딜은 3가지 형태로 이뤄졌다. 사업의 주고받기, 사업을 통폐합해 컨소시엄 형태로 지분 참여, 매각 등이었다. 빅딜은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아이디어를 냈다. 반도체는 삼성, 자동차는 현대나 대우, 석유화학은 LG로 몰아주는 것이었다. 98년 9월7일까지 그림의 윤곽이 그려졌다. 반도체가 잘 해결되지 않았고, 자동차는 삼성과 대우가 직접 협상을 벌였다. 전경련은 12월7일 빅딜 발표까지만 관여하고 이후에는 구조조정위원회가 실무를 처리했다. -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 구조조정이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면서 더 많은 기업이 살아 남지 못한 게 아쉽다. 정부가 450%대였던 부채비율을 2년만에 200% 미만으로 떨어뜨리라고 했는데 엄청난 무리수였다. 일본은 500%에서 200%로 내려오는데 20년 걸렸다. 기업 현실에 맞지 않은 정부 압박도 문제였다. 당시 이헌재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 기획단장이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불용 자산이나 비주력 계열사의 매각 일정을 제출하라고 했다. 기업들은 비밀이 알려지는 순간 매각 가격이 떨어진다며 버티다 결국 비공개 조건으로 제출했지만 곧바로 신문에 관련 내용이 나와버렸다. 인수 상대방은 버티면 가격이 떨어지니 매각이 될 리 없었다. 부채비율을 무조건 낮추다 보니 계열사 상호 간에 순환출자가 늘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업들의 순환출자를 끊어여 한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켰다. 어떻게 부활할 거냐를 놓고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전윤철 당시 공정거래위원장과 많이 싸웠다. 김 대통령이 합의를 해오라고 해서 결국 예외 조항을 많이 집어넣는 선에서 전 위원장과 타협했다. - 대우그룹의 해체를 놓고 논란이 많다. ▦대우 그룹이 그런 식으로 정리된 것은 잘못됐다. 대우 그룹의 성장 동력이었던 무역 금융을 끊어버리며 단기간에 어려워졌다. 대우는 세계경영하면서 도처에 공장 지었는데 2년 정도 있으면 투자금이 회수되는 상황이었다. 대우가 해외에서 구축해놓은 코리아 브랜드, 엄청난 가치를 잃어버렸다. 98년 3월 김우중 회장은 “75억 달러에 GM에 지분을 파는 MOU 체결을 체결해 걱정 없다”고 했다. 그런대 GM이 2개월 실사하더니 또 2개월 연장해서 7월말까지 이어졌다. 이 때 정부의 불신이 커진 것 같다. 그러더니 9월에는 아예 안 사겠다고 떠나버렸다. 그 동안 대우는 엄청 멍이 들었다. 정부의 지나친 압박이 GM에 ‘더 싸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 것 같다. 그들의 딜이 깨진 데는 정부에도 책임이 일부 있다고 본다. 딜이 깨진 뒤 대우는 12조원 가량 지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결국 (대우 관련해서) 공적자금이 23조원이나 들어가지 않았나. 정부로서는 현명한 장사를 한 게 아니었다. - 채권단에서는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황제 경영에 대한 불신감이 컸다. ▦ 보기 나름이다. 김 회장의 황제 경영 덕분에 대우가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람에 대한 평가에는 항상 명암이 있다. 김 회장의 혜안과 리더십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외환위기 때는 김 회장으로서도 한계 상황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 입력시간 : 2007/01/3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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