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전자 대기업에 휴대폰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의 관계자는 최근 기자를 만나 거래 기업으로부터 무려 12~13%에 달하는 단가 인하요구를 받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마다 3~4%씩 단가를 낮춰왔던 관례에 비춰보면 이번에는 감당하기 힘든 과도한 수준이라는 얘기였다.
국내 휴대폰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5~1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한꺼번에 10%가 넘는 단가 인하압력을 넣는 것은 사실상 이익을 남기지 말고 장사하라는 의미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무리한 단가인하 요구는 스마트폰 열풍으로 지난해 일반 휴대폰 분야의 판매실적이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기침을 하면 중소기업은 몸살을 앓는다. 부품업체도 이미 생산량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 고통은 서로 나누는 것이 미덕이라지만 지금 상황에서 13%에 달하는 단가인하 요구는 고통을 협력사에 떠넘긴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전자 대기업들은 연초만 해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며 기본급의 300%에 이르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당시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은 3%를 넘기기 힘들었다.
요즘 원자재 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납품단가에 대해 조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자재 등 원가상승 부담을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행위는 우리 경제 전반에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을'의 입장인 주물업계가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해 납품중단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을 보면 대기업의 일방적 단가조정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기업도 이윤을 목표로 움직이는 기업인 이상 경쟁력 유지를 위해 단가인하를 추진하는 일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단가인하도 효율성ㆍ생산성 측면에서 기존 기술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이 이뤄질 때나 가능한 일이다. 호황을 누려도 나누지 않고 시장이 녹록지 않을 때는 터무니없는 단가인하를 요구한다면 협력업체가 무슨 수로 개발하고 대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 성과는 독식하고 고통은 전가하는 행동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