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지방노동청 고양지청 근로감독관들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업체 관계자를
만나 추석 전 밀린 임금을 지급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지방노동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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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달리 명절을 앞두면 임금을 체불당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감정이 격해지게 됩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약속대로 10일까지 체불임금을 청산하기 바랍니다.”(근로감독관)
“밀린 임금 전부는 아니더라도 추석 전에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죠.”(업체 대표)
지난 5일 오전 11시 관할 지역내 체불사업장을 찾은 서울지방노동청 고양지청 김석윤 근로감독과장과 업체 대표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기자가 동행한 탓도 있지만 체불사업주에게 체불임금 청산 지도활동을 나온 근로감독관은 ‘불청객’일 수 밖에 없기 때문.
이날 김 과장이 방문한 업체는 지난 4월부터 임금이 체불되기 시작해 현재 체불금액만 10억원이 넘는다. 추석 전에 밀린 두달치 월급이라도 지급하겠다며 사정을 봐달라는 업체 대표의 ‘읍소’에 김 과장은 “추석 전에 체불임금을 모두 청산하도록 하는 것이 방침”이라면서 “근로자들의 진정 및 고소가 더 늘어나면 법적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이 회사처럼 사용자가 청산 의지를 갖고 있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면서 “추석을 앞두고 한명이라도 더 많은 근로자들이 밀린 월급을 받고 귀향할 수 있도록 체불임금 청산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올 들어 체불임금이 크게 늘고 있다. 7일 노동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7월말까지 4,802억원의 임금이 체불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2%가 증가했다. 지난 2005년부터 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시행에 따라 체불여부가 확인되기 전에 당사자간의 합의로 종결된 경우를 포함하면 체불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종별 체불임금 실태는 역시 제조업이 34.3%로 가장 많지만 건설경기 및 내수침체의 영향으로 건설업(11.7%)과 도소매업(8.1%)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경인지방노동청 안양지청의 문기호 근로감독과장은 “1~2년전에 비해 체불임금 진정사건이 15% 가량 늘어난 것 같다”면서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가 안돼서인지 음식점과 PC방, 학원과 같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임금체불이 전체 진정사건의 40% 가량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최근 임금체불이 늘면서 근로감독관의 업무량도 폭주하고 있다. 고양지청의 경우 11명의 근로감독관이 1,200여건의 사건을 처리, 1인 평균 109건의 사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국 노동청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다.
체불임금 진정사건의 해결율은 60% 내외로, 40% 가량은 체불사업주의 사법처리로 이어진다. 특히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한번 집단체불이 발생하면 임금 청산이 아닌 사업체 청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문 과장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근로자수가 많은 사업장의 임금체불 발생은 곧 폐업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부도가 나거나 도산한 체불사업장의 퇴직 근로자들에게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체당금(替當金)도 올 들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8월말까지 1,116억3,100만원의 체당금이 지급돼 전년 동기의 971억3,600만원에 비해 15% 가량 증가했다.
김석윤 과장은 “과거 사업주들은 임금이 체불되면 죄의식이라도 가졌는데 요즘은 월급을 안줘도 근로자들이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오히려 당당해 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하다”면서 “모두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추석 명절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체불근로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사업주들이 체불임금 조기청산에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