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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업계가 학수고대하던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9부 능선을 넘었다. 2011년 처음 발의된 지 3년 만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앞서 투자은행(IB) 육성 등 핵심 내용에 대해 다소 이견을 보이기도 했으나 "현재 금융투자업계가 증시 침체 등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국내 자본시장 인프라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에 합의했다.
그동안 자본금만 크게 늘린 채 국회만 바라보던 대형 증권사들은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로 헤지펀드에 대한 신용공여 업무와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상 인수자금 제공, 신생 기업 발굴시 자기자본투자 등 대형 IB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10일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와 앞으로 열릴 법사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시행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세 번의 좌절 뒤 성공=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IB 육성과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 설립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에서 세 차례 통과가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장외파생상품 중앙청산결제소(CCP)와 상법 등 일부 개정 사항만 통과되면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둘로 나뉘었다. 이날 정무위원회 심사소위에서도 "증권사나 시스템 위험 등이 존재한다"는 야당 측의 지적에 따라 기업 신용공여와 ATS 도입 등 일부 조항이 수정됐다.
심사소위 심사자료에 따르면 기업대출 및 일반신용공여 등에 대한 한도금액이 각각 자기자본의 100%에서 총 100%로 줄었다. 즉 기존 조항에서는 기업대출과 일반신용공여를 각각 자기자본의 100%까지 가능하도록 했으나 현재는 두 부문의 총 금액이 자기자본의 100%를 넘어설 수 없다. 계열회사 등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계열회사에 대출을 하지 못한다'는 조항도 담았다. ATS 간 경쟁구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국거래소가 ATS를 100% 자회사화할 수 있다'는 내용은 삭제했다.
◇대형 IB 성장 길 열려=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는 소식에 금융투자업계는 일제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간 정체됐던 IB 등의 사업을 다시 추진할 기반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에 발맞춰 자본금을 3조원 이상으로 늘렸던 삼성증권ㆍ대우증권ㆍ현대증권ㆍ한국투자증권ㆍ우리투자증권 등 IB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던 증권사들은 한시름을 놓았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의 9부 능선을 넘어섬에 따라 헤지펀드에 대한 신용공여 업무와 기업 M&A 과정상 인수자금 제공, 신생 기업 발굴시 자기자본투자 등 대형 IB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한 대형 증권사 고위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 소위를 통과하면서 IB 업무로 진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며 "국회 본회의 통과를 예상하는 만큼 해외시장을 중심으로 투자여력을 키울 수 있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증권사 연구원도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로 증권사들의 실적에 대한 먹구름도 걷힐 것"이라며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특화된 IB 업무에 중점을 두면서 국내 증권업계에서의 밥그릇 싸움도 한풀 꺾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ATS제도 도입에도 파란불이 켜지면서 유통시장 효율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증권사들이 ATS로 등록해 상장주식 유통에 나설 경우 거래소와의 경쟁, 각 매매체결회사와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 인하와 거래체결 속도 증가 등 자본유통시장의 효율성이 전반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ATS가 도입되면 현재 상장시장뿐 아니라 유통시장에서도 거래소가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 여러 매매체결회사가 등장하면서 시장 자체가 경쟁적으로 변화한다"며 "특히 거래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매매체결회사의 경우 정식 거래소로 등록됨에 따라 국내 거래소들의 국제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