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시장은 '솔직한 롯데'를 반긴다
홍준석 기자 jshong@sed.co.kr
"주가가 20만원대로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세요."
지난달 중순 롯데쇼핑 임원회의. 좀처럼 화를 안 내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목청을 높였다. 실적이 나쁘지 않은데 주가가 왜 내리막길만 걷느냐는 것. 실제로 2ㆍ4분기 롯데쇼핑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3%(1,481억원)나 늘었으나 시장의 기대치에는 못 미쳤고, 주가는 줄곧 하락세였다. 신 부회장은 결국 장밋빛 전망치로 부풀려진 기업설명회(IR)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솔직한 롯데'를 강력 주문했다.
이후 롯데는 이례적으로 IR를 자청,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할인점 사업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등 3ㆍ4분기 실적이 '그저 그럴 것'이라며 고해하듯 보수적인 경영계획을 털어놓았다.
시장이 실망한 것은 당연지사. 증권사마다 목표주가를 내렸고, 이는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돼 지난달 말 31만원 초반대까지 밀려 다시 연중 최저치(30만원)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시장은 '솔직한 롯데'를 외면하지 않았다. 예고된 저조한 실적에 얽매이는 대신 유통왕국으로서의 미래 성장성이 무궁한 롯데쇼핑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된 것. 주가는 10월 길목부터 상승무드를 타면서 3개월 만에 장중 36만원을 돌파했다. 25일에는 3ㆍ4분기 실적이 당초 고백한 대로 '그저 그런'대로 그쳤음에도 당일 주가는 3%나 오르는 저력까지 보여줬다.
만약 롯데가 3ㆍ4분기 실적 예상치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낙관적으로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십중팔구 40만원에 자사주를 산 직원들과 수많은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에 또 다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롯데는 '은둔 기업' '죽의 장막' 등 불투명한 색채의 좋지 않은 이미지로 언론에 자주 비쳐졌다. 실제로 올초 롯데쇼핑 상장 당시 기자들을 배제한 채 몰래 IR를 진행하는 등 사례들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신동빈 체제로 넘어가는 지금 더 이상은 곤란할 듯싶다. 언제까지 과거의 롯데에 머물기를 바라는가. 시장이,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번 교훈을 통해 확실하게 깨닫고 더욱더 달라진 롯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입력시간 : 2006/10/26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