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뒤에 작은 달은 떨어지고/ 푸득푸득 새는 날아 산 빛 속에 숨어든다// 대청 앞의 늙은 파수꾼은 휘늘어진 나무/ 성곽 너머 고매한 어른은 우뚝 높은 산// 경박한 세상이라 뼈만 앙상한 몸을 싫어하고/ 흐르는 세월은 젊은 얼굴을 앗아간다// 나는 너와 은혜와 원한을 다투지 않건만/ 무슨 일로 벌레처럼 헐뜯으려 덤비는가?"
영조의 신임을 받았던 조선 후기 문신 이광덕(1690~1748)의 시다. 인생의 황혼기에 생각에 빠져든 화자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욕만 실컷 얻어먹고 사는 처지를 두고 허전함과 억울함을 토로한다. 실제 탕평론을 주장했던 이광덕은 노소론의 당쟁이 심할 때 중간파라는 이유로 극렬분자들의 미움을 샀었다. 300여년 전의 옛 시이건만 정치는 당쟁 뿐이요, 여기저기 다툼의 목소리만 높은 오늘날 되뇌어도 손색없는 글귀다.
한문학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 문인들의 한시 100수를 번역과 해설을 덧붙여 소개한다. 독자의 공감을 배려한 저자는 지나치게 고풍스러운 작품이나 음풍농월과 전원의 여유를 노래하는 작품은 최대한 배제한 채 "결함의 세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흠 많은 인생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이 살아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엄선했다.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