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격식 포기하니… 축제가 되더라

■ 토요 Watch-결혼문화 바꾸는 신삼포세대
반지 직접 만들고 웨딩촬영도 셀프… 예물·예단 대신해 사돈간 동반여행
실속 최우선하는 젊은층 욕구 반영… 상당수 부모도 형식 파괴에 긍정적


'신(新)삼포세대'는 관습처럼 굳어진 고가의 결혼반지와 웨딩사진 촬영, 과도한 예단, 그리고 틀에 박힌 결혼식을 과감하게 거부한다. 결혼식 준비부터 신접살림 마련, 신혼여행까지 전 과정에서 실속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담으려는 젊은층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지난주 말에 찾은 서울 대학로 반지만들기카페 본점. 전국 체인을 둔 이 카페에는 지난 1980년대 초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나무 책상을 비롯해 대패와 망치, 광택용 기계, 도금 스프레이 등이 놓여 있다. 이날 예비부부 한 쌍이 비지땀을 흘리며 결혼반지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예비신부인 최진영(26)씨는 "이곳에선 30여종에 달하는 디자인 샘플을 갖추고 있어 원하는 디자인의 반지를 직접 제작할 수 있다"며 "은반지는 4만~6만원, 금반지는 20만원대면 가능하다고 해서 일부러 찾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과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무기로 내건 반지 카페들이 최근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김연수 반지만들기 이사는 "예전에는 결혼 전에 다이아몬드나 진주 등 보석별로 세트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을 찾는 예비부부들을 보면 그것도 옛말인 것 같다"며 "실제로 종로에서 웨딩 전문 보석상을 운영하는 지인의 경우 예전만큼 정형화된 격식을 원하는 손님이 줄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대 근처에서 반지 제작 공방을 운영하는 윤유식 대표는 "친구나 연인 손에 이끌려 방문한 손님 중에서는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만 나갈 때는 크게 만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최근 손님이 눈에 띄게 늘면서 하루 15명이 넘고 있다"고 귀띔했다.

보통 수백만원이 소요되는 스튜디오 웨딩촬영을 포기하는 예비부부들도 적지 않다. 정경환(29)씨와 김민혜(28)씨 부부는 결혼 전 인근의 한 공원을 찾아 셀프 웨딩촬영을 했다.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도안을 활용해 만든 피켓과 비눗방울 등 촬영 소품을 마련하는 데 쓴 3만원과 사진 인화비 1만3,000원 등 4만3,000원이 웨딩촬영 총비용이다. 정씨는 "지금도 거실에 걸려 있는 웨딩사진을 볼 때면 당시 장소를 섭외하고 옷과 소품 등을 고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돌아다니던 기억이 떠올라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된다"며 "사람들이 없는 틈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하다 보니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천편일률적인 스튜디오 촬영보다는 우리만의 개성이 묻어나는데다 그 시간에 함께했던 추억이 담겨 있어 (우리 자신에게) 최고의 결혼선물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허례허식의 대표 명사가 된 예단·예물을 대신해 사돈 간에 화목을 다지는 동반여행을 다녀오는 문화도 새로운 변화다. 채수민(29)씨와 황안나(27)씨 부부는 고가 예단 대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2박3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제주도에 도착해 식사하기 위해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어색한 침묵이 흘러 가슴을 졸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양가 부모님들은 함께 말을 타고 도자기 제작 체험을 하면서 스스럼없이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해졌다. 특히 여행 둘째날에는 예비부부가 미리 써온 편지를 양가 부모님 앞에서 낭독하는 시간을 가지며 새롭게 가족이 된 기쁨과 행복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채씨는 "무엇보다 자연스레 많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식구가 될 예비 며느리와 사위가 자라온 스토리와 가정환경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게 고가의 예단과 예물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결혼 준비부터 실속과 개성을 추구하는 '신삼포세대'는 결혼식 당일에도 각자의 개성을 한껏 살리며 새로운 결혼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친구나 선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면 비슷한 패턴의 형식에 지루했다고 말하는 이종현(31)씨와 정미란(31)씨 부부. 이들은 기존에 없었던 세상에서 유일한 결혼식을 고민하던 중 토크콘서트형 결혼식을 구상하게 됐다. 토크콘서트 결혼식은 주례를 없애고 양가 부모님과 신랑·신부가 하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열렸던 이들의 결혼식은 가족들이 직접 부른 축가와 미리 만든 영상 공개, 하객들의 자유로운 질문과 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정씨는 "6년 가까이 연애를 했지만 양가 부모님의 거주지역이 서울과 부산이라 서로 가까워질 기회가 적었던 터에 색다른 결혼식을 준비하며 서로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며 "참석한 지인들 역시 한 편의 토크쇼를 보는 기분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결혼식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부부 각자가 가진 재능을 한껏 살려 콘서트 결혼식을 마련한 경우도 눈길을 끈다. 정현진(37)씨와 김혜진(34)씨 부부는 대학 시절부터 음악 동아리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2부 행사로 콘서트를 직접 준비했다. 1부 결혼식은 20분 내외로 신속하게 마무리한 후 2부는 1시간 가까이 열띤 공연으로 채우는 이른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혼식을 기획한 것. 신랑과 신부의 악기 연주, 신혼부부 친구들과 동아리 후배들의 축가 공연으로 채워졌다. 특히 마무리는 하객들까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축하해주는 것으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관혼상제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결혼식 문화에 서서히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최근의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이나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기존의 격식에서 벗어나 실속과 개성을 추구하는 결혼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불필요한 비용을 아껴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키려는 일종의 생존전략"이라며 "예비부부의 부모 세대 역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학번으로 기성세대보다는 관습이나 틀에서 자유로운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파격 결혼식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결혼이 개인에서 더 나아가 가문 간의 결합인 만큼 이처럼 실속과 개성을 추구하는 결혼문화가 가능한 것도 부모의 동의와 적극적 참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이 교수는 "최근 부모 세대들은 자녀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한데다 결혼에 대해서도 독립한 자녀의 동반자적 결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형식보다는 실속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자녀들을 출가시킨 부모 중 상당수는 실속형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김민혜씨의 어머니인 정미희(63)씨는 "주변에서 예단·예물부터 시작해 결혼식은 남들이 하는 것만큼 제대로 갖춰서 해야 결혼 후에도 무탈하다고 조언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정작 자신은 자식들을 결혼시키지 않은 친구가 대부분"이라며 "자녀를 이미 결혼시킨 지인들은 사돈댁에 밉보일까 걱정하기에 앞서 서로가 원하는 결혼식 비용이나 결혼 형식 등을 솔직하게 말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조준석씨는 최근 큰딸의 결혼식을 기부 행사와 연계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조씨는 "그동안 지인들 자녀의 결혼식에 가면 축하 화환이 가득하고 축의금 봉투만 오가는 형식적인 결혼식이 많아 기억에 남지 않았다"면서 "내 자식의 결혼식만큼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애들과 의논해 청첩장에 '화환이나 축의금 대신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자'고 적었더니 하객들이 동참하면서 정말 의미 있는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실속을 추구하는 결혼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고급 호텔 예식장도 요즘 같은 성수기에는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같은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이 표면화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이벤트에 투영되면서 가진 자들은 더욱 과시하려고 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돈이 적게 드는 실속형 결혼식을 선호하면서 결혼식 자체도 양극화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특히 결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혼집 마련이 예전 세대보다 어려워지면서 결혼식 형식에 드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고 신혼집 자금 마련에 집중하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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